예쁘지 않은 꽃도 있다

신현수 <조선 가인 살롱, 2020>

by Skyblue

1. 학생은 수수한 게 예쁘다?



요새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교복을 입고 있는데도 웬만한 어른 못지않은 화장빨(?)이 두드러지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 학생 때는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수수함 자체가 예쁘다지만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은 분명 청소년 시기에 꾸미고 다니는 재미를 일절 몰랐을 것이 틀림 없어. 그게 아니라면 어리고 젊은 데다가 예쁘기까지 한 너희들을 질투해서 일 수도 있고.


나도 어른이지만 재주껏 예쁘게 화장하고 꾸민 10대들의 모습이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어른들보다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청소년이라면 학교 교칙도 지켜야 하고, 부족한 용돈에 화장품을 사는 것도 여러모로 부담이 될 텐데 말이야.


어른이 되어보니까 외모와 꾸미기로 승부를 봐야 하는 순간들이 꽤 많더라.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학교 교과 과정으로서 화장이나 꾸미는 것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니까. 그러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꾸미고 있을 너희들은 시대를 앞선 위인 일지도 몰라.


2. 조선 가인 살롱



체리는 대한민국 중3,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을 그리기보단 거울 앞에 자기 얼굴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예쁘게 꾸며볼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여자 아이야.


학교만큼이나 자주 들락거리는 화장품 가게, 매번 쏟아지는 신상 화장품들을 살피는 일도 결코 게을리하지 않는 건 체리의 일상 중에 하나였어. 거울을 마주하면서 언제나 거슬렸던 것은 넙적 둥글한 얼굴형. 어떻게든 매끈하고 날카로운 브이(V)라인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신상 셰이딩(턱 주변과 얼굴형에 음영을 주는 화장품의 일종)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어. 메이크업 유튜버도 극찬했던 그 제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서 써보려는데 거울이 빙빙 돌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거야. 어라? 타임슬립! 체리는 조선 시대로 와 버렸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도 기가 찬 이 마당에 미션을 해결해야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듣게 된 체리는 갑작스레 궁궐 만치 으리으리한 집으로 끌려가게 돼. 그곳에는 체리 눈에는 부족함이라고는 1도 없을 정도로 예쁘게 생긴 효연 공주가 있었어. 그런데 글쎄 이 공주가 자신의 외모가 예쁘지 않은 것에 우울증이 걸리고 말까지 못 하게 되었다는 거야.


효연 공주를 구해야만 해. 바닥으로 치달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도 그리고 스스로를 만족할 만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도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체리는 <조선 가인 살롱>이라는 현판을 걸고 효연 공주를 비롯하여 외모 콤플렉스에 힘들어하는 조선 여인들을 구하는 일에 뛰어들게 되지.


3. 애초에 얼굴은 잘못이 없다



그 옛날 조선에서도 외모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을 줄이야 솔직히 생각해보지 못했어. 심지어 남자들도 관직에 나가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관상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풍겨내야만 뽑힐 수 있었다지?


체리도 자기 얼굴에 그리 만족하지 못했어. 화장에 열을 올렸던 것도 어떻게든 나아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거니까. 눈도 가늘게 찢어져 있고 코도 낮고 얼굴은 넙데데하게 둥그스란 체리의 얼굴은 종종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했거든. 그런데 조선으로 와 보니 절세미인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더 아름다워지고자 한 조선의 여인들은 체리와 같은 얼굴을 원하고 있고, 뭔가 기분이 묘했을 거야.


외모에 기죽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 거울 앞에서 침울해지며 얄궂게 얼굴만을 탓한다마는 얼굴의 잘못 보다는 태어난 시대가 맞지 않았던 게 아닐까? 지금이 아닌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문제는 자신이 태어날 시대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설사 그렇게 고르고 골라 원하는 시대로 간다 한들 그 시대의 아름다움에 걸맞은 외모를 완벽하게 갖춘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거야.


아니, 애초에 어떤 시대든지 예쁘고 안 예쁜 기준 따위는 누가 정하고 있는 거고?


4. 예쁘지 않은 꽃도 있다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을 꽃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는 걸 보면 인간은 꽃을 좋아하는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꽃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하며 서글프기도 해.


꽃은 예쁠 수 있지만 예쁘려고 존재하는 건 아니지. 그저 눈에 보이는 색깔과 모양으로 꽃의 전부인양 판단해버린다면 꽃에 대한 엄청난 실례일 거야. 꽃은 더 많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분출시키는 것일 뿐이니까. 살아있으며 앞으로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함을 준비하는 것, 그게 꽃이야. 꽃은 살기 위해서 더욱 잘 살기 위해서 피어날 뿐야.


체리도 그렇고 효연 공주도 그렇고 각자가 살아가는 시대만 달랐을 뿐이지 예뻐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건 둘 다 똑같아. 그저 자신이 예쁘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시대를 거슬러 온 체리가 먼저 깨달았던 것일 뿐.


어설프게 인간을 꽃에 빗대어 모든 꽃은 아름답다느니, 각기 다르기에 예쁘다느니 하는 말들이 식상하게 느껴질 때 무덤덤하게 이렇게 말해보고 싶더라.


예쁘지 않은 꽃도 있다
꽃은 예쁘려고 피어난 게 아니다
그저 살기 위해
그 꽃으로 더 잘 살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피고 또 핀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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