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 <페인트, 2019> _ 부모와 자식이 필연이 아니라면?
1.
영국에는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속담이 있대.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은으로 만든 그릇을 자주 사용했는데, 은수저로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는 일이 많았던 거지. 은수저를 물고 있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유한 부모를 만나 은수저로 밥을 먹게 되었으니 엄청난 행운을 쥐고 태어난 게 틀림없어. 그래서 이 속담의 뜻도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다' '행운을 쥐고 태어나다' 이런 뜻으로 쓰여.
우리나라에서도 부유한 계층은 은으로 만든 그릇이나 집기를 자주 사용했어. 조선 왕조 실록을 보면 조선의 왕들이 정치적 음모로 시달릴 때 혹시 음식에 독을 넣지 않았나 확인하는 방법으로 은수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용도가 조금은 다르지만 은으로 만든 수저로 밥을 먹었다는 건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부유한 가정환경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어. 그러다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는 보통 '금은동'으로 서열이 매겨지곤 하다보니 수저의 색깔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순서가 매겨지기 시작했다고 해.
뜬금 없이 왜 수저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테지만 우리가 어떤 삶을 살까는 태어나면서부터 물고 태어난 수저의 색깔에 따라 결정되는 게 많기 때문이야. 살면서 이루어 낼 수 있는 성취는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가로 어느정도 판가름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이 노력하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노력을 해도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말은 청년들 스스로가 자조하며 유행처럼 크게 번지기 시작했어. 그런데 요새는 청소년 너희들의 입에서도 수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 같더라. 조금은 서글프기도 해. 청소년 시기만큼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마음껏 꿈꾸어야하는데, 너희들에게조차 어자피 공부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2.
소설 <페인트>에는 부모라는 수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아이들이 등장해. 아, '특권'이라는 말이 지나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국가가 관리하는 NC (National Children)센터의 아이들이거든.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원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아마, 사회 시간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을 거야. 사람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아서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나이든 고령 인구의 비율만 늘어나고 있다는 것 말이야.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데 고령자는 점차 죽어간다면 전체 인구 수는 줄어들겠지? 인구가 유지되지 못하면 국가 전체는 큰 혼란에 휩싸이고 말거야.
소설 속에서는 이 위기로 나라가 붕괴할 수도 있겠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국가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게 돼. 제발 아이를 낳아만 달라고. 키우는 걸 원치 않는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거지. 그렇게 모여서 자란 아이들은 어느 정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게 되는 13세부터 '페인트 = 페어런츠 인터뷰'로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선택할 수 있게 돼. NC센터 아이는 1차, 2차, 3차 페인트를 거쳐 입양 여부를 결정하는데, NC센터의 아이를 입양하면 국가로부터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다 큰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라 아이를 키우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예비 부모 지원자들이 적지 않았지.
주인공 제누301도 매년 여러 차례 페인트를 하지만 매번 퇴짜를 놓기 일쑤였어. 부모들은 하나같이 입 바른 말들로 제누를 칭찬하기에 바빴거든. 제누에겐 그게 진심으로 와닿지가 않았어. NC센터의 아이들은 18세가 되기전에 페인트를 거쳐 부모를 만나서 나가지 않으면 ‘센터 출신’이라는 딱지를 안고 살아가게 돼. 페인트로 부모를 만나면 센터의 기록은 사라지고 입양된 부모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지. 하지만 페인트가 성사되어 입양을 간 아이들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었어.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교묘히 본색을 드러내는 부모들도 있었고, 부모라는 존재가 없다가 있게되니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뛰쳐나오는 아이도 있었지. 제누가 17세가 될 때까지도 선택이 신중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NC센터의 아이들은 부모가 없지만, 부모만큼이나 챙겨주는 가디들이 있거든. 센터에서의 생활은 물론이고 페인트의 전 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여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람들이야. 가디 중에 '박'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부모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아버지를 진짜 부모로 만나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자유롭지 않았던 불쌍한 사람이지. 박은 부모로부터 겪을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들이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을 해.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을 센터의 아이들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 제누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부모를 만나게 돼. 으레 페인트 1차면 끝내버리는 제누가 2차, 그리고 3차까지 하게 되지. 이를 지켜보던 가디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실은, 제누가 마음에 들어하던 부모는 가디의 눈에 너무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거든. 가디들이 뭐라 말해도 제누는 그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무척이나 좋아했어. 물론, 제누가 끝내 입양이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3.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꿈을 꾼다는 말이 있어.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 안에서는 마음껏 그려볼 수 있거든. 이야기 속에서는 사람이 동물로 변하기도 하고, 날아다니기도 하고, 심지어 마법을 부리기도 하지. 그런데 참 모순적인 게 무엇이냐면, 꿈속에서 말도 안 되는 것들 꿈꾸다가도 현실 속을 살아가면서 차마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긴다는 거야. 동화 <파랑새>를 보면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파랑새를 찾아 헤맸지만, 파랑새는 결국 집에 있었잖아. 뭔가 허무하면서도 안도했던 그 결말을 읽으며 어린시절의 나는 진짜 중요한 게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부모님이랑 심하게 다투고 마음이 울적할 때면 나를 잘 이해해주고 더 좋은 사람이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지 않았을까 싶어. 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이나 태도를 가지고 비교하며 말하는 것만큼 너희들도 대놓고 표현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누구네 부모님은 어떻다든대 하며 비교해보곤 했을테니까. <페인트>를 읽으며 주인공들이 페인트를 하고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과연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았을 거야.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주어지는 게 나은 걸까, 아니면 NC센터의 아이들처럼 누가 부모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훗날 나의 기준을 가지고 보다 멋진 부모를 선택하는 게 나은 걸까. 읽는 내내 너희들의 뇌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되지 않았을까 해. 그 선택의 기로에서 '부모'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그런데 정말 부모를 고를 수 있게 된다면 내게 맞는 부모를 잘 선택할 수 있을까? 옷 하나도 잘 못 고르는 나인데, 세 번의 면접을 가지고 평생을 함께할 부모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부담스럽기도 하더라. 내가 나를 잘 못 믿는다고 해야할까? 만약에 내가 선택한 부모가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일테니까 그런 부담감을 온전히 떠안는다고 생각하니 또 아찔해졌어.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가 딱, 정해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
4.
책 제목이 <페인트>라니, 너무 잘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를 인터뷰하는 페인트. 그렇게 내가 고른 부모와 살면 페인트를 쥐고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삶을 알록달록하게 칠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일까? 지금의 부모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들, 할 수조차 없는 것들을 마음껏 질러볼 수 있다면 과연 원하는 삶을 충분히 누리게 될까?
한번 쯤 고민 해봄직한 너희들의 고민 한 자락이 이야기가 되었어. 읽어보니 어떠니? 제누와 NC센터 아이들이 부모를 면접하고 마음에 드는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엿보면서 너희들은 어떤 부모를 꿈꾸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간절히 그리던 이상적인 부모를 만나게 되면 지금의 부모님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겠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한다 할지라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노력과 열정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마주할 때면 다시금 이 질문으로 돌아와 맴돌게 될 거라는 거야. 만약, 내가 다른 부모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그 질문 말이지.
부모는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신 분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이야. 너희도 그건 너무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끊임없는 경쟁과 서열화하는 구조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짓는 가정 배경이라는 것이 크게 부각되었던 게 아닐까 싶어. 힘들게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만드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가진 자들의 입맛대로 기회를 차단하게 만드는 가혹한 이 사회구조 때문이야. 나에게 금수저를 물게 해 주지 못한 부모를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 더군다나 부모도 너희에게 금수저를 물게 해 주지 못한 건 부모조차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존재하지 않아. 너희를 만나고 처음 '부모'라는 것을 해 본 분들이니까, 게다가 아직 너희들이 다 자라지 않았으니 부모의 역할은 현재 진행형이지. 너희가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것처럼 부모님도 조금씩 부모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 사랑하는 청소년들아, 조금은 우리 부모님들을 너그럽게 봐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