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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17.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22

22화 : 두 명의 백설

[지난 줄거리] 

백설 공주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면서 아르델 왕국은  혼란에 휩싸인다. 마침 백설이 돌아왔다는 이븐 왕국의 서신이 도착하고, 아르델 국왕은 누가 진짜 백설인지를 가리기 위해 12명의 대신들과 백설 공주를 속히 부르는 내용의 답신을 보낸다.

시리우스는 정체를 밝혀  위험에 빠진 백설이 걱정되어 무작정 지하감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백설의 손을 붙잡고 울고 있는 윌리엄과 마주하게 된다.


22 :  명의 백설 


—-



“헤이온, 네가 백설이라니…혹시 살기 위해 꺼낸 말이더냐? 하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너는 백설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윌리엄에게 백설 공주는 분노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마리아를 마음을 품으면서도 늘 괴로움에 떨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백설 공주 때문이었다.


마리아가 성에서 쫓겨난 후 한동안 백설 공주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그녀 또한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설 공주를 향해 품었던 분노와 증오의 마음은 죄책감으로 변해갔다.


윌리엄은 악의 고리를 끊어 서로에게 자유를 주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이븐 왕국을 도발하고 백설 공주와 접점을 만들어 정략결혼을 파기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결국 일은 다 틀어졌고, 그 과정 중에 헤이온을 만났다. 헤이온과 함께한 시간은 그간 마리아를 떠나보내고 그간 잊고 지냈던 포근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헤이온이 독충에 물려 제 눈앞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아이가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헤이온이 어느 날 백설 공주라고 스스로를 밝힌 것이다. 윌리엄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직접 입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왕자님, 결혼.. 을 파기하고자 하는 마음 아직도 변함없으신지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헤이온... 진실을 말해 보거라…”


“왕자님..제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깨달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진실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순간에도 제가 왕자님께 드릴 수 있는 진실이 있고 왕자님이 마주하셔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는 결코 다른 게 아닙니다.”


“당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네가 백설이고 아니고가.. “


“헤이온은 왕자님을 연모한다...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진실이고 진심입니다. 그리고 왕자님께선 백설 공주와 맺은 정략결혼을 무산시켜야 한다.. 이게 왕자님이 마주하셔야 할 진실입니다.”


갑자기 밖에서 간수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윌리엄은 백설의 두 손을 붙잡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발걸음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 피오나 공주, 시리우스가 서 있었다.


—-


“알아보았느냐?”


“피오나 공주는 지하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지하감옥에 갔다고? 대체.. 무슨 일로?”


“이상한 게.. 피오나 공주가 감옥에서 나온 직후 윌리엄 왕자가 같이 따라 나왔습니다.”


“뭐? 윌리엄이?”


필립은 억눌러왔던 분노가 머리끝가지 차올랐다. 그때 밖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왕자님, 피오나 공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필립은 주변을 물리고 단둘이 정원으로 나갔다. 시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원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을 바라보며 천천히 거닐었다. 필립은 시리우스의 보폭에 맞추어 걸으며 시리우스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게 아니오?”


“사랑의 셈범… 그날 왕자님을 앞에 두고 잘난 듯 떠들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결혼을 택하였다고.. 그게 공주의 셈법이라고 하지 않았소.”


시리우스는 필립이 한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필립을 바라보았다. 순간 필립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


“어쩜 그리도 정확하게 기억하십니까?”


“그야.. 공주가 너무도 확신에 차서 말했으니까…”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장미로 둘러싸인 꽃밭 안으로 들어갔다. 흐드러지게 핀 꽃으로 담을 엮어 두어서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조심스레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를 위해 주고 또 주어도 뒤돌아서면 또 무엇을 주어야 할지 생각합니다. 마치 지금껏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여인은 남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녀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보여줍니다. 안타깝게도 호의는 그 남자를 향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수없이 많은 호의를 받았음에도 아무것도 받지 못한 사람처럼 텅 빈 마음에 괴로워합니다.”


“여인은 왜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오? 사랑을 그렇게 받고 또 받았으면서…”


살짝 흥분해 언성을 높이는 필립의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님도 조심하셔요. 이 셈법에 들어서는 순간 스스로가 무너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슬슬..”


필립은 앞서 걸어가는 시리우스의 손을 잡았다. 뒤를 돌아 필립을 바라보는 시리우스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필립은 그대로 손을 당겨 시리우스를 품에 안았다. 시리우스는 필립의 가슴에 그대로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울었다.


—-


그 시각 아론의 집에는 라오스와 솔르 그리고 도나우가 한 자리에 모였다.


“왕비님이 미뉴에트에게 백설의 자리를 대신해달라고 부탁했단 말이지?”


“백설이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어떻게든 이븐 왕국의 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을 테니까 왕비님 나름대로 준비를 해 두고 싶었던 것 같아.”


솔르의 말에 라오스는 파울이 보낸 서신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그때 도나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백설이 자기 정체를 밝히기로 한 것도?”


“아니, 그건 백설 스스로가 선택한 일 같아.”


“이러다가 백설이나 미뉴에트 둘 중 하나가 크게 잘못되면 어쩌지?”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는 솔르. 이를 보고 라오스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걸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인 거 아니겠어? 내일 이븐 왕국에서 12명으로 구성된 사신단과 파울과 레아 미뉴에트가 아르델 왕국에 도착할 거야.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왕비님.. 그 전에 아르델 왕국에서 두 왕자를 키우는 유모였대. 사정이 생겨서 쫓겨나다시피 성을 나오게 됐는데 그때 왕비님을 몰래 피신시켜 이븐 왕국의 왕비로 세운 사람이 있대. 돌아가신 이븐 국왕의 충신이라고 했어. 분명 이번 사신단에도 포함되어 있을 거야. 그 분과 접선해서 이 상황을 뒤집을 만한 대안을 찾아보자.”


—-


“이븐 왕국의 백설 공주와 대신 대표 열둘이 아르델 왕국 국왕께 인사 올립니다.”


크고 웅장한 접견실 앞에는 아르델 국왕과 두 왕자가 나란히 앉아있다. 왼쪽 편에는 감옥에서 끌려 나온 백설 공주가 바닥에 반쯤 엎어진 자세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파울과 레아는 백설 공주로 변장한 미뉴에트에게 긴장하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손을 잡아주었다.


통나무 집에서 지낼 때 파울은 레아, 미뉴에트, 백설과 함께 자주 다녔다. 주로 여자아이 셋이서 앞서 걸어가며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파울은 뒤에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곤 했다. 어느 날 백설은 이런 말을 했다.


레아랑 미뉴에트는 자매야?  이렇게 닮았어?”

원래 친하게 지내면 서로 닮는  몰라?”

그럼 나도 둘이랑  친해지면 머리 색깔도 빨간색에서 금발로 바뀌려나?”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백설을 놀리는 레아와 재미있게 지켜보며 파울과 미뉴에트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미뉴에트는 초주검이 된 백설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동요한 게 얼굴로 드러나지 않게 애쓰려고 했지만 결국 표정을 일그린 채 사선으로 떨구고 말았다. 아르델 국왕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백설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파울과 레아 그리고 자신으로 변장한 미뉴에트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한 나라의 공주라 불릴 만큼 기품 있고 아름다워 보였다.


“환영하네 백설 공주.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겠네. 여기 있는 이 계집이 자신이 백설 공주라고 우기고 있사오만 공주는 이 계집을 아시오?”


“처음 보는 아이입니다만 저렇게 심한 몰골로 방치하신 겁니까? 아르델 국왕께서는 한낱 소녀를 이리 만들 정도로 무자비한 분이셨습니까?”


미뉴에트는 최대한 감정을 거두어내고 건조하게 맞받아쳤다. 국왕은 미뉴에트의 반응에 꽤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사심이 깊소이다. 공주. 신분의 위계가 엄격한 세상에서 공주도 아닌 계집이라면 어떠한 대우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소? 공주의 마음은 잘 알았소.

내일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여 누가 진짜 백설 공주인지를 두고 투표를 하겠소. 백설 공주가 아닌 사람은 아르델 국법에 따라 이 왕실을 능멸하고 조롱한 죄로 사형에 처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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