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일이었다. 3년 혹은 30년간 커플로 있으면서도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곁에 있는 누군가로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랑을 느낀다는 건 함께한 물리적 시간보다 감성적 교감의 강렬한 끌림이라는 질량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으리라.
이루지 못했던 첫사랑으로 인한 우발적 사고로 감옥에 가게 된 주인공 애나(탕웨이)는 어머니의 부고로 인해 시애틀로 가는 버스를 탄다. 그녀가 탄 버스를 급히 잡아탄 훈(현빈)은 여성의 사랑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호스트이다. 그에게 빠져 가출해버린 옥자. 그녀의 남편이 그를 죽이겠다며 풀어놓은 수하들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 훈. 급히 잡아 탄 버스였기에 승차권도 없고 요금도 부족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동양인 애나에게 부족한 요금 30불을 빌리면서 이들의 만남은 시작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느라 잠시 감옥을 나와서 다시 3일 후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애나의 사정을 알 리 없는 훈이었지만, 그녀의 그늘진 얼굴이 그의 맘 한 구석을 서늘하게 한다. 여성의 그늘진 구석을 치고 들어가 그녀의 맘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주특기인 훈에겐 특히 더 맘에 걸렸을 수도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랄 수도 있는.
반드시 30불을 갚겠다며 자신의 소중한 시계를 맡기는 훈에게 좀처럼 맘을 열지 않는 애나. 훈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도 그녀 앞에선 뻘쭘하다. 훤칠한 외모도 그녀에겐 투명인간이다. 그저 마냥 우울해 보이는 그녀. 그의 어떤 매력도 그녀의 마음에 딸려 들어가 질 않는다. 보통 남자라면 그 정도 관심 표명에도 무반응인 애나에게 자존심도 상하고, 우울한 에너지에 진력이 났을 법도 하지만. 훈은 쿨하다.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이틀째 우연히 만난 애나에게 훈은 자신의 생일이라며 놀이공원에 갈 것을 제안한다. 제안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훈의 발랄한 에너지가 점차 그녀의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신은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후 훈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애나는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된 사연을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건 없건 훈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그녀가 자신의 사연을 말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훈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가수 이효리가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서" 결혼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 말을 세상에서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데에서 표현이 된다. 그녀를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그 사연 많은 그녀를 감싸주고 싶은 맘이 바로 남자의 사랑의 시작이다. 그런 남자의 태도에 한없는 편안함을 느끼며 여자는 그를 보게 된다. 그 시점에서 여자는 남자의 객관적인 모습, 즉 외모, 성격, 사회적 위치, 능력, 직업 등등이 그녀만의 프리즘으로 굴절되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서로의 조건에 맞추어 적당히 만나서 결혼하는 커플들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참사랑의 경지이다. 나만의 "너"여야 사랑이 가능한 것이지, 나만의 "그것"은 사랑이 될 수 없다. 즉 "너의 존재"가 내 맘을 채우는 것이 사랑인 것이지, 돈 벌어줄 사람 혹은 밥해주는 사람으로서의 조건을 수행하는 "그것"은 그저 내 필요성을 수행하는 기능에 불과하다. 돈을 더 잘 버는 누군가로, 혹은 가사노동을 훨씬 노련하게 하는 누군가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애나가 훈에게 자신의 처참한 사연을,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했을 때 훈이 보여준 그 태도에서, 그가 호스트이든 쫓기는 신세든, 그를 둘러싼 악조건보다 훈이란 남자에게서 나는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여성들의 맘을 가장 뒤흔드는 명장면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내일이면 감옥에 가야 할 그녀는 그의 맘과 자신의 맘을 허용할 수 없다. 이튿날 다시 감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애나를 배웅하며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들던 훈. 결국은 그 버스를 다시 잡아타고 애나 곁에 앉고야 만다. 호스트로서 여성의 맘을 뒤흔드는 기술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그의 진심을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녹여낸다. 진정한 사랑에 빠진 남자는 이렇게 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강력한 한 방. 당신이 가는 곳이 어디든, 설사 감옥이라 하더라도, 내가 함께할 수 있는 곳까지는 곁에 있고픈 맘이다.
안개로 버스가 정거장에 서서 휴식을 할 때 훈은 옥자의 남편을 만난다. 옥자의 남편은 왜 옥자가 그렇게 너에게 빠졌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너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며, 도대체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 훈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는 단지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어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바로 이 대답에 있다. 훈이 어떤 태도로 옥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까 충분히 짐작이 되는 중. 부하들을 풀어서 훈을 납치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능력을 가진 남자가 물리적으로 여성을 부인으로서는 가질 수 있었지만, 여성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질 수는 없었던 해답이 여기에 있다. 누구나 외로운 인생.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맘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값비싼 귀걸이를 선물하고 팔로 안아주는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이다.
훈은 옥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체포가 된다. 경찰이 오기 전 훈이 애나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안고 나누었던 키스.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 그 달콤해야 할 키스신이 보는 이를 참으로 먹먹하게 했다.
감옥에서 나오면 여기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러 2년 후 애나가 그곳의 카페에서 그를 기다린다. 보는 이는 안다. 오지 않는 훈이 아니라 올 수 없는 훈인 것을. 3일의 사랑이 애나에겐 평생 갈 것도 안다. 2년이나 잊지 못하고 저 자리에서 훈을 기다리는 애나를 보면서.
애나가 훈을 만났을 때를 상상하며 인사를 하는 말들을 연습하는 장면에서 폭풍오열을 했다. 저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앞으로도 저 말을 얼마나 하고 싶을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갈 애나의 인생은... 앞으로 얼마나 뼈아프게 외로울까!
P.s.
<만추>라는 영화의 제목이 크게 와닿지 않아 별 관심이 없었다가, 이 영화의 영화 제목이 "late autumn" 즉 "늦가을"이란 뜻인 걸 알았을 때 나도 모르게 이 작품에 다가갔다. 어쩌면 이 가을 지독히도 나를 우울감에 젖게 했던 건 아마 이 작품에 닿기 위했음이리라. 시애틀이란 곳을 가보지는 못했으나, 그곳이 흐린 날씨로 유명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 영화에서 내내 흐렸던 가을 배경은 올 가을과 많이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