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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Mar 23. 2022

노바 백신

반전 매력은 마력이다

  국민 대부분이 3차까지 코로나 접종을 하는 동안 난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증상과 백신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백신을 맞아도 되냐는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입장 이해한다. 인간의 육체의 생사를 다루는 사람의 입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엄중함이 있어야 하는 고로. 그래도 미운 건 어쩔 수 없다.


  노바 백신 나오기 이전 다른 백신으로 예약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다 못 갔다. 한 번은 무서워서 펑크를 냈고, 한 번은 가족이 밀접접촉자로 격리가 돼서 못 갔다. 미접종자이다 보니 방역 패스로 인해 음식점 방문, 모임 등에서 철저히 소외되며 이러다간 사회생활 어렵겠다, 이참에 내 로망 중 하나인 자연인으로? 뭐 그런 상상을 하는 씁쓸한 케미의 시간을 보내던 차.

  안전하다는 노바 백신이 나온 후 예약을 하는 동안, 방역 패스를 겪으면서 왕따가 돼보니 사회적 동물로서 왕따가 얼마나 죽을 맛인지를 철저히 체험했기에,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숫자 받는 것도 아닌데 까짓것 맞자 하는 맘이 크게 요동되진 않았다. 내가 죽을 사람이면 죽는 거고 살 사람이면 어떻게든 살려주시겠지. 이렇게 어린애들을 셋이나 맡겨주셨으면서 설마 지금 죽게 만드시겠나 싶은 맘으로 오래 미뤄둔 숙제 하듯 백신을 맞으러 간 병원 대기실.


  젊은 아주머니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병원 대기실에 쩌렁쩌렁 울린다. 내원자 중 있었던 코로나 확진자인 모양인데, 보건소에서 뭐를 어떻게 발급을 해서 어쩌라는 절차를 몇차례 설명을 하는데도 저쪽에서 계속 딴소리를 하여 깝깝한 모양인지 계속 열 받아서 같은 설명 되풀이한다. 통화가 끝나고 이름이 불려져서 들어갔더니 그 열 받으며 통화하던 다혈질 아주머니가 의사였다.   


  보통 의사에게 갖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린 의사. 보통 의사들이란 무미건조하고 차갑고 이성적이며 전문 언어만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찬바람 슝슝 나는 기계 같은 사람들이 의사들의 전형 아니었던가? 그런데 마치 물건값 흥정하다가 시장에서 싸움 붙은 아줌마 같은 이미지의 다혈질의 이 여성분이 의사라고 하니 사뭇 놀라웠다. 이 희한한 첫인상은 바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혈소판증가증이 있어요."

  "그쪽 의사분(내 담당의사인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뭐라고 하시는데요?"

  "이 질환과 백신은 상관없지만, 백신을 맞아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답변할 의무가 없다고 그러시던데요."


  백신을 놓아주는 내과 병원 원장님인 아줌마 의사분이 화통하게 웃는다. 내가 본 중 진찰실에서 이렇게 화통하게 웃는 의사는 처음이다.


  "그건 환자가 선택하라는 뜻이에요. 만일 절대 안 되는 거면 그분이 안 된다고 했을 거야. 노바 백신은 안전해요. 내가 이 백신으로는 한 번도 컴플레인받은 적 없었거든? 코로나 걱정돼서 왔잖아요? 여기까지 오는데 생각 많았겠지만 코로나 예방 급하니까 그냥 맞죠."


 내가 봐온 의사들 중 뭔가를 딱 결정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면서 내 맘을 편하게 했던 의사는 이 분이 처음이다. 의사들의 기본 옵션이 결정장애 아닌가? '이리저리 위험한 거 감수하고도 너 이 치료받을래? 안 받으면 지금 병들어 아픈 대로 사는 거고. 선택은 네가 해.' 뭐 이런 조의. 이해하면서도 정네미 뚝 떨어지는 화법들. 정말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직종의 사람이 의사인데.


  뭐지? 나 이 언니 너무 끌린다. 이 언니 믿고 따라가면 그냥 건강해질 것 같다. 내가 남자였으면 바람날 뻔! 사람에게 있는 매력 중 가장 흡인력이 강한 매력이 반전 매력이다. 전형성을 깨는 매력은 마력과도 같다. 늘 이성적이고 정제된 언어로 찬바람 슝슝나는 의사란 직종의 전형성을 완전히 깨버리는 다혈질의 원석 같은 저 아줌마 의사의 반전 매력이 내겐 마력 같은 주파수 뿜뿜이다. 특히나 내 주변 사람들이 죄다 결정 장애자들이라 늘 내가 결정하여야 하는 중압감에 늘 시달려 살다 보니, 노바 백신 맞아도 된다고 결정해주는 이 의사의 박력이 무척 든든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는 동안 오한 및  국소 통증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지나가는구나 싶은 나흘째. 갑자기 심장이 조여들고 두 손과 목덜미가 저리면서 바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하였다. 한 30분을 그러더니 응급실을 가려니까 풀린다. 마취에서 풀리듯. 후유증인지 논문 때문에 무리해서 잠을 못 자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맞으라 했던 그 내과 의사가 원망스럽진 않다. 앞으로 더 겪어보고 싶다. 작년에 못했던 건강검진 여기서 해야겠다. 이 캐릭터 너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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