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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un 09. 2022

나는 갱년기 5.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다

   내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시험했던 기간인 것 같다. 저질체력은 늘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뉘었고, 실컷 잠을 자고 나면 머리도 몸도 무거웠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오면 숨을 쉬는 공기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들숨들을 베였고, 내 안구를 휘감는 가시광선은 눈 안에 가시처럼 까끌거렸다. 내 주변 현실을 인지하는 모든 감각들이 죄다 통증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어찌 바라보며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늘상 쉬라고만 말했다. 애들은 내가 늘 아픈 줄 안다. 집에서는 늘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이다. 생각이 아프고, 맘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이런 나를 일으킨 건 큰애 공부 바라지였다. 한 열흘은 그 과제 때문에 일어섰으나, 늘 그렇듯 큰애와 북쩍거리는 데 에너지 소모하면 나는 또 지쳤다. 의무감, 책임감, 과제. 이런 것으로 일어서는 한계이다. 늘 반짝하는 힘으로 벼락치기는 될지언정 근원적인 것이 해결이 안 된다. 나를 일으키는 주체적 삶의 에너지가 없다.

  나는 나를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차례 기나긴 폭풍을 맞으며,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던 이 삶이 뿌리째 뽑혀버렸다. 한동안의 멍했던 시간들은 뽑혀나간 삶의 기둥이 썩어나가는 고통에 나를 그냥 방치했던 기간일 수도 있다. 선택의 순간, 다른 선택지가 아무리 부럽다한들 그쪽을 쳐다보지 않고 내 선택을 보듬고 일구어 잘 키우기로 한 그 첫 마음이 흔들렸다.

  공부, 직업, 결혼, 출산과 육아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인생 과업에 대한 수용이냐 거부이냐에 대한 선택이기도 했다. 수용을 한다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무난하게는 갈 수 있었다. 공부를 못하면 문제시되고, 취직을 못해도 문제시되고, 결혼도 못하면 문제시되고, 애를 못 낳아도 문제시된다. 이들 중 한두 가지만 못해도 사회생활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마이너가 된다. 이게 싫어서 다들 나이에 맞는 사회적 옷을 입으려 기를 쓰는 것이리라.

  이런 과업을 다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과업을 위해 총력을 다 쓰다가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과업들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보다는 그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요구하는 자질이다. 대체로 의무교육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주입시킨다. 이는 국가 유지에 필요한 재원과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공부를 잘하여 좋은 직업을 가지면 당연히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낼 것이다. 결혼을 하여 아이를 많이 낳으면 국력의 핵심인 인구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 구체적으로 국가라는 테두리에 보호를 받으려면 그만큼 돈을 내고 사람을 내어 국가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라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받은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 취업, 결혼, 출산과 육아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을 향해 과업의 미완수자인 거처럼 마구 몰아붙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느껴지는 푸시들에 못 이겨,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짜 놓은 인생의 설계 안으로 들어가 꾸역꾸역 살아내느라 모든 힘을 소진시킨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엔 특히. 용기가 있어서 거부하기도 하고 용기가 없어서 숨어버리기도 하느라 과업의 미완수자인 채로 있지만, 결과적으로 영리한 선택지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내 관점에서는. 특히나 요즘처럼 혼자서도 할 게 많고, 출산과 육아가 가성비 최악의 과업으로 남겨지고 있는 때는 말이다. 사랑으로 퍼주는 것 이외의 것을 따진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과업, 적어도 내게는.

  나는 이 중 결혼을 거부했던 사람이었다. 막상 결혼하고 살아보니 짜증스러운 것도 많았지만 사랑받는 느낌이나 아껴주는 느낌은 교류하며 아이들을 낳아키우는 재미나 행복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지쳐 넘어질 때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자각할 때 들었던 지독한 외로움. 결혼하여 함께 의지하며 사는 건 줄 알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어도 사람이란 존재는 궁극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단 사실. 그게 내가 현재 겪는 몸, 맘, 생각의 고통의 핵심이다.

  결혼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란 말은 현재의 내겐 결혼은 해도 혼자, 안 해도 혼자라는 말처럼 들린다. 결혼을 해서 내가 가장 크게 착각했던 것이 바로 나와 남편, 가족이 한 세트로 나라고 생각했던 점이다. 철저한 권태기를 통해 남편은 나와 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의 사춘기를 통해 아이도 나와 딴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의 갱년기를 통해 나야말로 그들과 딴 사람이며 앞으로는 더욱 달라질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이라고 내게 이렇게 해주리라는 것을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 외로운 걸 크게 느끼는 건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감수성의 결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따라서 자책할 필요도 없다. 나를 일으키는 건 당장  눈에 보이는 책무인 건 사실이지만, 이젠 그런 책임보다도 더 강력한 한 방. 즉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외로워서 헛헛한 맘 , 씁쓸한 맘 누르진 말고 이겨내고 일어나는 것. 그게 바로 獨立이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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