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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Jun 15. 2022

내 아이는 사춘기 5.

진정한 사랑은 반품이 안 된다

  큰애는 누가 봐도 반듯한 순둥이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면모가 대견스럽기도 했고 애틋하기도 했다. 그런 애가 왜 자꾸 내게 따지고 드는 것일까?

  우리 모자는 늘 갑론을박이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따진다. 논리게임은 늘 그렇듯 지면 져서 기분 나쁘고, 논리적으로 진 상대가 기분 나빠서 으르렁거리는 것을 보면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다. 궁극적으로 서로 갈등하며 부딪치면 물어뜯고 뜯기다가 강제적으로 멈춰지는 것이 끝이다.

  이건 내겐 싸움이지만 아들에겐 투쟁이다. 내 생각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일종의 독립운동이다. 대체로 내 생각을 따르는 게 쉽고 빠르고 편리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뻗댄다. 제 방식에 맞지 않느니 하며 제 스타일을 주장한다. 제 스타일대로 실험하는 사이 일은 진척되지 않고, 미완결된 과제들은 죄다 내 차지이다. 그런데도 내가 독단적이라고 몰아붙인다. 쌍욕이 그냥 나온다. 목소리가 포효하는 짐승이 된다.

  이 녀석의 원산지가 나라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건지!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더니, 탓 해도 좋으니 제발 네가 말한 것 제대로 지켜내 봐, 안 된다고 제발 내 탓만 하지 말고. 낳아서 키우는 내가 네 호구냐?


  호구 맞다. 예전처럼 애들이 죄다 농사 밑천이고 살림밑천이었던 시절에는 애들을 많이 낳는 것이 생계 및 집안의 부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출산은 생산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부모봉양 또한 자식의 의무였으므로 자녀 출산과 양육은 생계와 노후대비를 위해 필수적인 보험과도 같은 시대였다.

  지금은 자식이 농업의 인력원도 아니고, 노후에 자식에 기대느니 연금 보험이나 실버타운을 알아보는 게 합리적인 시대이다. 자식을 키운다는 의미는 낳아주고 키워줬으니 밥벌이해서 부모에게 갚으라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가 아니다. 낳아주고 키워주고 가르쳐주고 짝 지워주고 손주도 키워주며 평생 뽑혀 먹힐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호구. 현시대 부모 노릇을 경제적 논리로 해석해보면 호구 맞다.

  이런 호구노릇도 녹록잖은데, 지금의 엄마 노릇이란 온갖 욕을 바가지로 먹는 대상을 자처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매체며 주변 사회 모두가 엄마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애가 에서 사고 쳐도 엄마 탓, 애가 말라도 뚱뚱해도 엄마 탓, 나쁜 습관이 있어도 엄마 탓, 머리 나빠도 엄마 탓, 공부 못해도 엄마 탓, 게을러도 엄마 탓, 성질 더러워도 엄마 탓, 죄다 엄마 탓이다. 특히 TV 프로그램이나 교사, 의사들은 자신의 학생이나 환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 책임을 다 엄마들에게 묻는다. 그것도 애 앞에서. 애들은 더욱 기세 등등해져서 거봐라 다 엄마가 잘못된 거라잖냐고 쐐기를 박는다. 

  목숨을 걸고 배 아파 낳아서 내 모든 심신 에너지와 영혼을 다 쥐어짜 내서 키웠는데. 낳았고 키운 것뿐인데 왜 다들 엄마한테 뭐라고 하냐고들! 


  요즘 엄마 된 자들이 자식 덕 보려고 낳았을까나? 영악한 사람들은 결혼 안 한다. 결혼해도 자녀를 갖지 않는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해서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됐다.

   아이를 낳아보니 그 이전까지의 사랑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의 신세계를 경험하며 아이를 키웠고, 힘들었지만  사랑의 가치를 배웠다. 이 사랑을 배우는데 드는 학비가 내 젊은 시간을 송두리째 바치고, 내 마음과 몸과 힘을 다 바치는 헌신이었기에 정말 비쌌고 힘겨웠다. 비싼 것이나 힘든 건 감수할 만한데, 왜 자식들과 이 사회는 엄마 된 자들을을 못 잡아먹서 안달이냐고. 여자가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있으면 죄다 자식들의 호구도 모자라서 사회의 호구로 사는 게 당연한 건가?

   많은 가정 주부들이 자존감이 갈수록 낮아지고 우울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공부를 애 낳는 것만큼 죽어라 했다면, 회사생활을 애 키우는 것만큼 매달려 버텼다면 다들 손가락질하는 그들보다는 훨씬 잘 돼있을 거다. 엄마가 애랑 실랑이하면서 겪는 모든 과정이 죄다 상처투성이이고 눈물바다이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이요, 우울증은 기본 옵션인데, 육아전문가라는 사람들 얘기 들으면 다들 엄마가 잘못됐대.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애는 그 자리, 혹은 더 미치고 팔딱 뛴다고. 그러면 애가 저렇다고 또 엄마 문제라고 그러네. 이 땅의 엄마들은 자식의 호구, 사회의 호구. 나도 그런 호구 중 하나.


  이 상황에서 더 내게 질려버리는 건 결국은 나다. 내가 호구라도 좋으니 자식이 목표한 건 어떻게든 차질 없었으면 하는 맘. 이 자식이 내게 한 짓을 생각하면 욕을 바가지로 해도 시원찮거늘, 어떻게든 네 목표 완수한 다음에 우리 묵은 감정은 정리하자며 매일매일을 참는다. 나같은 인내력 노약자인 사람의 인내심이 이런 초월적 경지에 다다르다니! 내 스스로에게 내가 놀라는 중이다.

   내가 깨져서 절대 "을"의 호구로 살아보니 자가검진이 된다. 나란 인간은 자존심이 정말 셌었구나. 내 남편 상처 많이 받았겠다. 내 갑질 받아주며 호구 노릇하느라고. 내가 낳은 사랑, 무르지도 못하고 지지고 볶더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내가 사춘기 갑질하는 내 아들을 무를 수 없듯, 권태기 갑질하는 나를 신랑도 무르지 못하는 걸 보니..


진정한 사랑은 반품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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