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의 사랑은 종류가 참 다양하다. 난생처음 누군가로 인해 떨렸던 첫사랑의 설렘. 이루어지지 않았던 첫사랑이 줬던 첫 교훈. 즉 설레는 감정이란들 소통과 교제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인생의 서랍 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고, 앞으로의 내 인생과는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한 철저한 자각.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 떨리고 설레서 소통하고 교제해도, 궁극적으로 또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서 헤어짐을 반복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일으키며 또다시 사랑을 하고. 정서적으로 아무리 밀착된 관계라 해도 법적으로는 엄밀한 남이기에 사귀다가 잠수를 하거나 환승을 하는 등 비도덕적인 매너로 내쳐진들 그 책임을 물 수도 없는 무례함에 너덜너덜해질 무렵.
어쩌면 이런 게 귀찮아서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부터 사람 마음으로 게임을 할 줄 모르는 나였기에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한 경험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늘 꽝이었던 흑역사. 이런 악순환을 청산하고파서 고르고 고른 기준이 착하고 순수한 남자였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순수하게 사랑할 줄 아는 남자라 결혼을 했거늘.
결혼 후의 사랑은 연애와 차원을 달리한다.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결혼은 연애의 경우와는 달리 반품이 매우 어렵다. 반품은 고사하고 이쪽저쪽 가족들, 태어나 자녀들, 생계, 사회적 입지 등등에서 부과되는 책임과제가 첩첩산중이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수행 불가의 과제들을 쓰나미로 해치우는 과정이 바로 결혼생활이다.
이 과정은 정말 녹록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아 버리지만, 함께 하는 배우자가 있어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힘이 나며 조금씩 조금씩 정들고 좋은 결과엔 마주 보고 웃고, 나쁜 결과에는 서로 기대 우는 것. 그게 결혼한 부부의 사랑의 모습이다. 연애 때 심장이 쿵쾅이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잘 견디며 일궈오다가 밀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한 번쯤 오는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가족들 속에 희석되어서 나로서 온전한 자리가 없이 가족들의 누군가로만의 입지밖에 없을 때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혹은 내 경우처럼 너무 아파서 모든 게 번아웃일 때 이미 나만 쳐다보고 있는 가족들 속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을 때의 멘붕도 흔한 경우이다.
강렬한 에로스에서 시작된 사랑이라도 부부가 되어 사회적 과업을 수행하면서 서로에게 제2의 부모가 돼있을 때, 특히 자신이 조금 더 과중하게 가족들의 의지처가 됐을 때 내가 쓰러진다면 이처럼 난감한 경우는 없다. 그래 아무도 없었다.
남편, 자식 이전에 부모, 형제도 나에게는 의지처가 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는 이 없었고, 다들 자기 말만 내게 뱉어내고 갔다. 이게 너무 억울해서 울고 불고 발악을 했던 기록이 바로 이 글이다.
감정의 밑바닥 실체까지 다 본 뒤에야 다시 깨닫는다. 난 누군가를 절대로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세팅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나같이 약한 멘탈에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원가족인 부모, 형제, 현가족인 남편과 자녀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에게 적절한 거리로 나를 위치시키신 것이구나 싶은 게.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지만, 난 그 고독을 좀 더 철저히 깨달아야 했고, 슬프지만 내 것으로 인지하고 함께 사귀어야 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사람에 의존해서 다시 일어섰다면 아마 난 그 사람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여 영적인 위기가 왔을 수도 있다. 무너진 나를 일으킨 건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책임감처럼 강력한 사랑의 표상이 또 어디 있을까? 즉 결혼을 유지하는 중추가 책임감인 것이다.
어느새 훌쩍 커진 큰아들을 보며 이 아이의 유년 시절 모습이 기억나지 않은 채로 아직까지 품에 안을 수 있었던 아기적 모습으로 내 맘에 남아있는 내 잔상들. 모든 순간순간이 사랑이었다.
내가 결혼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남편이 못 견디도록 밉다 등과 같은 말로 하소연하면 독신 친구들은 "있는 것들이 더 한다."라고 한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면서. 나는 그대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이가 사십이든 오십이든 너희들은 여자이지 않느냐고.
내가 세 악기의 불협화음을 겪으며 철저히 깨달은 건 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태껏 여자이길 염두에 두지 않을 때는 이토록 불행하지 않았다. 언제든 미용실 가서 머리 손질하고 메이크업받으면 난 매혹적인 여성이 될 수 있자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난 매혹적인 여성이어서는 안 된다. 남편이 나에게 아직도 여성적 매력을 느낀다면, 심장내과를 알아봐야 할 일이다. 따라서 내가 더 이상 여성이면 사달 나는 일인 걸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내 몸이 여성성을 상실한 것에 억울해하며 여성성을 부르짖었으나, 모순되게도 이건 내게 축복이다. 이른 갱년기라고 허탄할 것도 없다. 길게 살면 백 년 인생에서 오 년 정도 앞 뒤로 가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젠 내게 결핍이라 느끼던 남편, 자식으로부터의 애정을 리셋하기로 했다. 더 이상 열정을 담아줄 에너지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의 사랑인 책임감으로 내 할 도리는 다 하겠다고. 또한 결핍이라 외로워도 고독이 내 책무라는 것도 이젠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란 사람은 원래부터 고독한 사람이고 외로운 사람이다. 그걸 도와줄 사람은 절대 없다는 것, 오로지 나 스스로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난 하나님이 꼭 필요하다는 것.
일터에 나와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웃고, 큰애에게 전화해서 과학 진도를 체크하고, 작은아들에게 게임하면 안 된다고 잔소리하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오늘 저녁 일정을 알려주고.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웃어!"라고 말하며 나를 응원하는 나. 고독한 사람이지만 행복을 추구해보겠다고. 책임을 다하며 사랑하겠다고. 항복도 포기도 아니다. 주어진 현실에 살아야 주어진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 이 결론을 위해 달려온 이 글과의 동행 여정이 내 인생에 크게 의미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난 외로워서 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백지는 내 말을 들어주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열심히 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