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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Dec 20. 2022

가을앓이

그래서 사람들은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또 사랑하나 보다

늘 그렇다.

아름답거나 달콤하거나 기쁘거나 행복했던 일이 잠시 내 가슴을 설레게 한 이후에 찾아오는 건 갑작스러운 결별과 긴긴 그리움이다.


갑작스러운 겨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가을이 가면 겨울은 오는 것이니까. 그러나 가을은 언제가 끝이다라는 것이 늘 모호한 채 슬슬 사라진다.

끝인가?? 끝인가 보구나, 아직 안 끝인가 보네, 아직 가을이다.,. 11월의 말은 늘 그렇게 가을인 듯 아닌 듯 점점 식어지는 가을의 뒤안길을 계속 쳐다보게 만든다.

며칠부터는 딱 겨울, 며칠은 가을의 마지막 날! 이런 게 있다면 좋겠지만. 겨울이 온다는 건 자연의 섭리지만 가을은 늘 그렇게 가는 듯 머무는 듯 미련을 남기다가 어느새 훌쩍 사라진다. 어느 날 갑자기 끝이다! 이렇게...


어차피 예정된 가을과의 결별이었기에 난 겨울이 오면 그냥 이 겨울을 잘 살 줄 알았다. 그러나 미련 맞은 가을이 떠난 자리의 이 차가운 자리는 서글프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단, 지난 계절 동안 가을이 내게 보여준 높고 투명한 하늘, 눈부신 햇살, 나무와 꽃들의 톤 다운된 천연빛깔들, 공기, 가끔의 비와 흐린 공기. 바람, 낙엽, 그리고 소리들.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나를, 나의 마음을 새로운 세계로 이리저리 끌고 다녔던 가을에게 난 영혼이 사로잡혀 그저 홀린 듯 그렇게 가을에게 업혀 다녔다.

어차피 한 철로만 예정된 끌림이었다는 것도 다 알았지만, 난 넋 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별이 주는 충격, 긴 그리움이 몰고 올 긴긴 상처의 시간들이 나를 크게 괴롭게 할 것인지도 알았지만, 바보처럼 난 또 가을을 사랑하고 말았다.


그리고 가을이 없는 이곳에서.

혹독하게 추워서 가을 따위는 잊고 싶었으나, 추운 만큼 가을과의 추억은 더 선명히 떠오른다. 다신 돌이킬 수 없는 계절, 다신 볼 수 없는 계절인 줄 다 알지만, 홀로 이 겨울이 주는 칼바람을 견디면 지나간 추억에 아직까지 피식.

그건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이래서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사랑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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