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들이 실은 죄다 말쟁이들이다 보니 전화기만 붙들면 기본이 한두 시간이다. 어제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문 선생님과 한 시간도 넘게 통화하면서.
편도선이 부어서 고생하는 신랑 얘기를 하다가, 나와 사랑에 빠졌던 남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다들 말이 없다는 점. 이러한 통계치는 내가 말이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말없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가 내게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부끄러워서 말도 못 붙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남자보다는 나를 좋아하는 남자의 공통점이라고 보는 게 조금 더 합리적일 것이다. 즉 내 일방적인 마음으로는 남자를 사귄 적이 없으므로 내 남편을 포함하여 연인이었던 사람들은 당시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나를 좋아하였던 사람이었기에, 말이 없는 남자라는 통계치는 내 취향이 아닌 그들의 취향이 나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은 늘 자신은 말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내가 말이 많아 좋다고, 내가 재미있다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시로 재잘거리는 수다쟁이이다. 반면 남편은 남 얘기 들어주는 걸 좋아한다. 말쟁이와 귀쟁이가 만났으니 심심할 틈이 없다. 서로의 특기인 말하기와 듣기를 신나게 하고 헤어지면 귀쟁이는 재밌어서 좋고 말쟁이는 후련해서 좋으니. 난 늘 귀쟁이들이랑 잘 맞았다.
말쟁이다 보니 남의 말 듣는 것도 말하기만큼 좋아한다. 난 전공과 업을 잘 선택한 것이다. 인터뷰 현장에 가면 열이면 열이 다 나를 좋아해 준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시고, 젊은 사람들은 죄다 언니, 오빠들이 된다. 그저 업으로만 스치는 게 아니라, 듣고 있는 동안은 나도 그들의 일부로 빙의가 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또 다른 그 사람들을 느낀다. 이걸 그들 역시 느낄까? 단 한순간도 진심 아니었던 적 없이 깊이 공감하며 그들을 응원하는 내 마음을. 그래서 인터뷰 현장에서 다들 그렇게 나를 사랑해줬던 것일까?
물론 안 그랬던 사람도 더러 있었다. 처음에는 귀찮아했다가 인터뷰 이후 다져진 라뽀로 인해 이뻐해 주는 포지션으로 급선회하는 사람도 있었고, 쭉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사람이 다 내 맘 같진 않으니까. 그러나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들의 삶이라는 독자성을 내게 공유해준다는 것 자체가 적어도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진심일 수 있는 이유의.
요컨대 난 이 일이 좋다. 그러나 좁고 깊게 사람 사귀는 스타일이라 낯선 사람 만나는 게 나로서는 정말 부담된다. 이 부담감을 대부분 오버로 상쇄시키곤 했다. 대체로 가성비 좋았지만, 요즘 부작용이 팍팍 느껴졌다. 이젠 오버가 부자연스러운 나이인 것이다. 이젠 나도 역시 기운이 딸리고...
사람을 좋아하여 사람이 늘 일에 우선한다는 철칙이 있었지만, 인터뷰를 위해 나답지 않게 오버한다는 의미는 일에 우선하여 나를 놔버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도 사실은 사람이고 일보다 더 우선해야 할 소중한 인격체인데 말이다. 따라서 인터뷰를 다녀오면 몇 날을 끙끙 앓았다. 나답지 않은 인격을 끌어다 쓰는 오버를 이젠 내 몸이 못 버티는 거였다. 이젠 나도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나답게 일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올 가을앓이는 아마 나답지 못했던 것을 떨쳐내고 이젠 나도 좀 보살피고 사랑해주면서 일을 해야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 즉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하는 거 평생 안 지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하려는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 무르익은 늦가을 속을 달리다 보니 또 사람들의 사연 속으로 여행을 가고프다. 슬슬 근질근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