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에서는 <가질 수 없는 너>라는 명곡으로 알려져 있는 뱅크. 이 밴드의 또 하나의 명곡이 바로 이 <가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브레드 피트 주연의 영화 <가을의 전설>의 유명세로 인해 노래 제목이 프리미엄을 받은 것도 있지만, 특유의 서걱거리는 낙엽 같은 목소리와 곡의 코드 진행에 있어서 느껴지는 아름답지만 쓸쓸한 정조가 듣는 이의 마음을 온통 마른 낙엽 가득한 빈 마당처럼 만들곤 했다.
이 곡은 부활의 <사랑할수록>이라는 곡과 함께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잊을 순 없어도 잊히고 싶진 않다"는 여주인공의 대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게 늘 그렇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나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랑이 끝난 자리는 늘 무언가 부서져있다. 그래서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잎들이 서걱이는 가을 길들은 사랑이 끝난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이별은 아프지만, 다른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건 다시는 만나지도 기다리지도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누군가를 담았던 자리, 그 사람을 보낸 자리에서 느껴지는 부서짐, 서걱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법이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완전히 잊지 못하는 나를 보면 어쩔 때는 정말 바보 같다는 자괴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때로는 내 아파했던 시간들과 마음들이 다 아깝기까지 하다. 따라서 내가 못 잊는 것처럼 나도 안 잊혔으면 좋겠다는 다소 심술 맞은 희망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서걱이다가 소멸하는 마른 낙엽처럼 온통 무모하고 무의미한 것들 뿐이라는 사실, 내면을 어지럽히는 서걱임을 자연이 소멸시켜주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임을 깨닫게 되면서 사람은 곧 '인내'를 배우게 된다.
기다림이라는 부질없는 기대를 갖고 가을의 전설을 믿는 그대에게 말하고 싶다. 헤어졌으면 기다리진 마. 기다림은 기대인데, 부질없거든. 기다렸지만 안 돌아오면 애타서 힘들고, 기다렸는데 돌아오는 것도 다시 이전 상황의 번복이고 반복이니 힘들고.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 마음의 에너지가 다른 사람보다 한 열 배 정도는 돼서 흘러넘친다면 모르겠으되. 절대 기다리는 것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