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좀 한다는 여자들이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번쯤은 흔히 부르는 노래. 너무 흔한 노래는 귀에 멜로디가 익숙해지면서 스치듯 지나치는 가사를 놓치는 경우가 흔하다. 내겐 이 노래의 가사가 그랬다.
얼마 전 우연히 흘러나온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듣다가 순간 울컥하던지!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하는 폭력이라는 거, 그게 때론 내가 본의 아니게 자처하기도 할 때가 있는 거, 따라서 그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채로 괴로운 시간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거, 그게 바로 짝사랑이다.
이 노래에 나오는 "그대"라는 나만의 "애인"은 정말 "나"의 마음을 모르고 "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라 묻는 걸까? 좋은 사람 있다며 만나보란 말이 진심으로 혼자인 "나"를 걱정해서 소개하는 걸까, 아님 "나"의 맘이 부담스러워 떨쳐내려는 액션일까? 난 왠지 후자일 것 같다. 이렇게 절절한 마음을 모를 수 있을까? 진심이면 어떻게든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아직도 혼자냐고 묻는 심보는 제발 꺼지라는 뜻인 것도 같고, 일종의 갑질 같기도 하다.
사랑도 갑을 관계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을"이 된다. 더 들어주고 더 양보하고 더 맞춰준다. 그 사람 놓치기 싫으니까, 헤어지는 게 너무 무서우니까. 을의 사랑을 받는 갑이, 더 사랑받는다고 자칫 오만해지면,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상대를 맘대로 쥐락펴락하는 것을 가스 라이팅이라고 한다. 가스 라이팅은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부, 부모, 형제, 친구 등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라는 정으로 형성된 관계에서 사랑 받음을 무기 삼아 상대에게 무례한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데에선 흔히 일어난다.
이 노래도 일종의 그런 폭력이 느껴졌다. 사람이 살면서 진심으로 맘에 담을 수 있는 이성을 몇이나 만난다고, 쉽게 맘에 담기도 어렵지만, 누군가의 맘 속에 들어가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이 노래의 "그대"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가 그대를 그토록 진심으로 맘속에서 담아두고 귀히 여기는 진심을 일평생 얼마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지. 어떤 형태로든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그 마음을 정말 몰랐다면 그냥 눈치 없고 센스 없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겠으나, 이 정도면 알지 않았나? 그런데도 혼자냐 묻고 사람 소개하겠다는 말을 하는 저의는 무엇인지. 아직도 혼자냐고 묻고 사람 소개하겠다는 거 보니 그대는 혼자가 아니고 좋은 사람이 옆에 있는 모양인데, 그럼 당신이 꺼지면 되는 거지 뭘 혼자냐 물어? 그런 물음이 "나"에겐 개처럼 무는 물음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냥 개소리라고!
나를 아껴주고 소중히 간직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맘 속에 있는 나는 참으로 이쁘게 있고, 소중하고 귀한 집에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맘 속어 지었던 내 집의 흔적을 모두 씻어낼 때까지, 더 사랑받는 쪽의 바늘같이 배려 없고 무의미한 말들은 일종의 갑질이다. 언젠가는 그 바늘이 창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을 더 많이 받았던 사람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더 많이 사랑하는 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 나도 예전에 눈치 없어서 그런 실수한 적 있었다.
"왜 아직 여태 혼자세요?"
그가 서늘한 눈빛으로 툭 내뱉던 말.
"고양이 쥐생각하는구나!"
미안했다. 난 정말 몰랐어서. 알았다면 그런 말 안 했을 텐데. 그래서 이 노래 가사가 더 바늘처럼 창처럼 내 양심을 찔렀던 것이다. 그때 내 눈치 없이 개념 없던 말이 아직도 어딘가에 박혀있다. 본의 아니게 나도 갑질을 해버렸던 10초 정도의 그 시간이 내 내면의 어딘가에서 안 흘러간다. 이젠 우연히 봐도 서로 못 알아볼 만큼 많이 변해있겠지만. 혹여 이 글을 어떤 루트라도 통해 보게 된다면 말하고 싶다.
잠시나마 아름답고 멋진 당신의 마음의 집에 나를 담아줘서 고마웠다고. 그 마음의 집을 몰라보고 본의 아니게 그런 말로 당신의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상하게 했던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내가 고양이 아니 듯이 당신도 쥐가 아니라고. 이성적 애정은 아니었어도, 그보다 더한 진한 우정으로 나 역시 당신을 진심으로 아꼈었다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 소식조차 감감하지만, 내 기억 속 그 멋진 그 모습으로, 늘 그렇듯 이쁘실 것을 믿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