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일 대전에서 일정이 있었다. 7일이 큰애 방학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요즘 6학년은 졸업식을 겸한다는 사실을 5일 날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건지!
급히 일정을 변경하여 6일 날 모두 모아 일을 보고 7일 새벽 한 시에 집에 왔다. 그리고 어제인 7일. 아이는 코로나로 인해 '학부모 졸업식 출입금지'라는 말을 전했다. 요즘 애들 졸업식 삭막하구나, 집에 오면 저녁때 파티를 해줘야지 싶은 마음으로 모처럼 집에서 띵까띵까.
한시가 넘어 돌아온 아이를 꼭 껴안아 주는데 애 표정이 좋지 않다. 알고 보니 '학부모가 졸업식장에 들어가는 것만 금지'였던 것이었다. 친구들은 부모가 운동장에서 꽃다발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졸업식이 끝난 후 가족을 찾아가기 바빴고, 내 아이는 애들이 다 가기를 기다렸다가 맨 마지막에 나왔다는 것이다. 서운했는지 눈물이 뚝.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은탁의 졸업식을 떠올렸다는 아이의 말.
미칠 것 같았다. 난 엄마도 아니다. 난 졸업식날 학부모가 학교에 가면 안 된다는 소리로 들었던 것이다. 남편도 그렇게 들었다고 한다. 하염없이 밀려오는 눈물이 점점 차올라 오열을 했다.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간 학교에 학부모가 갈 일이 있어도 내가 바쁘거나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가기가 태반. 아마 아이는 졸업식도 그런 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오는 걸 포기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난 그 시간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즉 바빠서 못 간 게 아니라, 가면 안 되는 줄 알고 안 간 것이다. 저녁 파티 메뉴를 뭘 할지 생각하며 집 청소 스트레스를 받으며 애한테 이벤트라도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애의 학교 행사 중 가장 의미 있는 졸업식에 이렇게까지 어처구니없이 애를 외롭게 만든 것이다. 아이를 껴안는데 눈물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그냥 오열 그 자체였다. 괜스레 남편한테 전화해서 성질을 부렸다. 이게 성질을 부릴 일은 아니지만 너무 창피했다.
아이가 입학하던 해 연년생 임신과 출산으로 거의 애를 챙겨주지 못했다. 동생들이 갓난아기와 어린 아기라서 이 연년생을 캐어하는데 지쳐있었다. 쪽잠을 자며 애들이 잘 때 나도 눈을 붙여야 했기에 아침식사를 못 챙겨주기가 태반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내가 아침밥을 챙겨준 횟수는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다행히 애가 먹을 것만 해놓으며 챙겨 먹는 것을 잘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스로 요리를 해먹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보다도 요리를 더 잘해서 엄마나 가족 식사를 챙겨주기까지 했다.
직장 때문에 천안에 내려온 이후 난 가사보다는 일하기에 바빴다. 맞벌이가 필수인 우리 집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학교 운동회나 행사는 거의 못 갔다. 참관수업 정도나 학부모 상담 정도 갔고, 코로나 이후에는 그것조차 전화로 대신했다. 연년생들이 어느 정도 자기 몸 자기가 간수할 수 있는 5, 6세가 되면서부터는 내가 외부로 돌아다니며 현지 조사도 가능할 수 있도록 가족이 도와준 데에는 전적으로 큰애 역할이 컸다. 물론 남편이 가사나 육아를 함께 하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남편의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맞벌이를 하니, 남편이 맞가사나 맞육아를 하는 건 당연한 자기 일이다. 자기 일을 하면서도 남편의 그런 태도는 주변에서 찬사를 받곤 했다.
그러나 큰애가 가사나 동생돌보기를 하는 것은 거의 우리 부부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이게 고마웠지만 어느 순간 이걸 당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애가 성장하여 사춘기가 되면서 이 부분, 특히 동생들 돌보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보이는 것이 서운하기까지 했다. 특히 일에 절어 몸이 아프거나 고장이 나면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남편은 늘 바빴기에 어느 순간 난 큰애를 남편에 준하는 수준으로 의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필요할 때 대체로 곁에 없었다. 주님의 종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늘 난 이게 외로웠다. 남편의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늘 내가 필요할 때는 바빴다. 이건 내가 애들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애들이 필요한 자리에 나는 늘 바빴다. 맘은 그게 아닌데 늘 바빴다. 이 틈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에 내가 익숙했듯 내 아이도 익숙했던 것이다.
필요할 때 없어서 홀로 삼키는 데 익숙한 그 떱떠름한 마음, 그것을 큰애가 똑같이 내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졸업식 사건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나랑 남편 모두가 잘못한 것이지만, 내가 평소 갖던 그 떱떠름한 마음이 함께 증폭되어 모든 화살이 다 남편에게 쏟아져나갔다. 아이는 괜찮다며 애써 웃어주는데 이게 더 안쓰러웠다. 가슴속에 들어앉은 어떤 마음의 방에 벽지들이 쥐어뜯어지고, 그 틈으로 치솟는 마음들이 눈물이 되어 망가지고 있었다. 면목이 없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금요기도회에 가서 한참을 기도하며 울고 오니 조금은 맘이 풀렸다. 그 사이 늘 그렇듯 익숙하게 동생들을 재우고 방 정리를 하는 큰애. 갑자기 일탈을 하고 싶다. 아이가 편의점에 가서 야식을 사 오고 싶단다. 평소엔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편의점 음식에 쓰이는 환경호르몬 덩어리로 포장된 음식은 절대 애의 입속에 넣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라 생각했기에 편의점은 근처도 못 가게 했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큼은 막 삐뚤어지자!"며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하니 애가 신이 났다. 얼마 되지도 않는 인스턴트 음식들이 계산을 해보니 거의 삼만원 돈이다. 차리리 그걸로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거나 배달해먹는 게 낫지 싶으면서도 애가 좋아하는 걸 보니 오늘 딱 하루만큼은 그렇게 두고 싶었다.
품위 없는 행동 하지 말라며 밖에 나가서는 군것질도 못하게 했다. 애가 학원 다니면서 같은 건물에 있는 와플집, 떡볶이 집에서 애들 군것질하는 거 보면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냥 모든 게 아이에 대한 가스 라이팅은 아니었는지. 성찰이 되었다.
모처럼만의 삐뚤어지는 야식과 삐뚤어지는 올 나이트. 그 속에서 아이에게 전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