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외
-마지막까지 ‘Yes’
그는 ‘No’ 라는 말을 모르는 듯 했다. 무조건 “Yes’ 였다.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대학 입학식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꽃송이가 내게 날아와 저기 그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코를 간지럽혔다. 간지러운 꽃송이의 휘날림에 나는 그만 눈길을 모두 그대에게 주었고 그 길을 놓치지 않고 심장이 마구잡이로 그에게 달려갔다.
내 심장을 폭행한 그는 멋있게 웃으며 친구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난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3월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대신 내 마음이 피어났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알고 싶었다. 우연힌지 우리는 같은 학교에 이미 들어와 있었고 남은 건 그와 내가 얼마나 같을지를 알아보면 되었다.
그와 나는 아쉽게 전공은 달랐다. 입학식 이후에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며칠 동안은 그랬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나와 같음을 공유한 친구들과 내 사랑을 공유하며 총합 넷이서 그를 찾아다녔다. 온 학교를 뒤졌다.
학교 신입생으로 다른 남자들과 썸을 탈 수 있었던 시기, 내게 온 고백들은 모두 뒤로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의 고백을 기다렸지만, 그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신입생 입학식 때 환상을 보았다는 것처럼 좀처럼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보름 정도는 학교에 빨리 가고 싶었다. 아마 신입생 중에서는 나보다 빠르게 정문을 통과하는 학생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교수건 선배건, 후배는 아직 없었으니 전교에 다 합쳐도 나보다 빠른 등교를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을 하냐는 질문이 그 증거라고 내놓을 수 있었다. 당시 내 별명은 고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 나의 빠른 등교 때문에 억지로 학교에 빨리 등교한 남자애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옆자리엔 이미 찜해둔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니었던 것이었을까, 마주칠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달을 보냈다. 마음에 피웠던 꽃은 어느새 지어가고 있었고 진짜 꽃이 피었다. 4월이었다. 한참 인기가 많은 우리 무리였다. 친구들은 어느새 손을 잡지 않고는 길을 걷지 않을 정도로 짝들을 만들었고 짝끼리 꽃놀이를 보러 갔으면서 혼자인 내가 불쌍하다며 나보고 같이 가자고 조르다시피 했다. 인연은 어차피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면서 나를 위로했다.
친구를 따라 꽃놀이하러 갔다. 아주 완벽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친구들은 나를 배신하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애와 나를 소개해주려고 꽃놀이를 억지로 데려온 거였지만 내 마음은 이미 주인이 있었다.
그는 꽃놀이 그 장소에 있었다. 꽃은 바다 옆 진해의 해군에서 봐야 한다며 말했던 친구들을 따라 멀리 있는 길을 온 보람이 있었다. 그를 만나려면 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이 슬펐지만, 그가 어딨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시간을 내서 그에게 면회 신청을 했다.
웬 처음 보는 여자애가 면회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받으면 어떨까, 혹시라도 만나주지 않으면 어떡할지 생각했다. 내 생에 그렇게 남 때문에 떨어 본 적은 없었다. 사랑이란 뭘까, 왜 이렇게 심장을 졸이게 만들며 그로 인해 살게 만들며 그로 인해 못살 것처럼 만들어 놓아버리는 걸까. 그렇게 가슴 졸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면회장으로 왔다.
당연히 누가 면회를 신청했는지 조차 모르니까,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안녕“ 이라고 크게 외쳤다. 그가 내 앞으로 왔다. 무슨 말을 할까.
“지현?”
“응 난 지현이야”
아, 면회 신청서에 내 이름을 적어놨었지. 그래서 내 이름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왜 면회 신청을 했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보다 왜 벌써 군대에 갔냐고 물었다. 뭐 미리 군대를 갔다 오면 좋은 거지만 그건 역사를 치른 이후에 했어야지 하며 나무랐다.
“그래”
처음 ‘그래’는 매우 설렜다. 앞으로 자주 듣게 될 그래였지만, 그날만큼은 매우 설렜다. 집에 가서 이불킥을 마구잡이로 날리기는 했지만, 그랬다.
“그럼 오늘부터 1일이다.”
“그래”
군대를 전역하고 그와 나는 학년 차이가 나는 동년생 캠퍼스 커플이 됐다. 그는 무엇이든 OK 였다. 영화 보자면 영화를 봤고 한강을 걷자고 하면 한강을 걸었다. 볼링을 치자고 하면 볼링을 하러 갔고, 무엇이든 OK였다.
나는 너는 너무 ‘yes’라며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역시 ‘그래’ 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군대도 가라고 해서 갔냐! 하니까 “응….” 했다. 응….
그래서 나는 오기가 생겼다. 그가 싫어하는 행동만 했다. 그래도 그는 그래였다. 예스맨은 언제나 예스였다. 그래, 내가 사랑하니까 참는다. 생각했다. 그래도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은 건 모두 해주는 그였다.
그런 날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너무 불에 지지면 결국 타버린다는 그런 사실을 잊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날도 내가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우리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나는 벌써 3년 차가 다 되어서 갔고 그는 이제 막 발을 내밀고 있었다. 신입의 어려움을 잘 아는 나였기에 그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보자고 했다. 그는 ‘그래’라고 나왔다. 처음에 적응 될 때까지 보고 싶을 때가지 참을 게, 라고 말하면서 한달은 참아볼게 말했었다. 한달 후에 보자구 했었지만 그 반도 못 참아 부른 나였다.
괜히 먼저 참아볼 게 말했던 나여서, 아주 중요한 할말이 있다고 속였다. 나중에 그냥 사랑해. 라고 해줘야지 했다. 나중에 결혼하자 라는 말이라도 할까, 중요한 말로 불러냈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하나 생각하며 혼자 쑥쓰럽게 웃었다. 그런 나를 그가 피곤에 지쳤지만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행복과는 별개로 그의 얼굴이 매우 지쳐보였다. 내가 괜히 보자고 했나 싶을정도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약간 마음이 상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피곤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거의 보름만에 보는데 그런 표정을 짓는게 약간 미웠다. 그래도 힘든 거 아니까 참아야지 생각했다.
“오늘 뭐할까”
그는 고민했지만 역시나 뭘 할지에 대한 결정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나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내가 얘기하면 ‘그래’ 하겠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리 준비해 놓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한테 준비한 멘트를 새긴 케잌을 준비하며 이벤트를 했다.
그가 웃었지만, 피곤함은 차마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못마땅했을까, 나는 그한테 이제 그래 좀 그만하라고 했다. 수 천 번 들은 그 말 ‘그래’를 그는 또 했다.
“너는 언제나 yes야? 내가 헤어지자고 해도 yes겠네”
식당을 나와 걷다가 계속 응응, 예스예스, 그래그래만 하는 그에게 짜증이 나서 말했다. 그가 지쳐 있었기에 참았어야 했는데, 매일 그래그래 하는 모습이 나도 여간 짜증났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래하지 않고 나를 봤다.
또 그래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눈빛으로 그를 봤다.
“니가 하자는 대로. 하지. 난 늘, 너라면 무조건 OK야.”
그래, 또 그래구나.
화가 머리 끝까지 돋았다.
그가 언젠가 나한테 했던말을 잊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납득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근원이 있겠지, 그 모든 걸 이해를 떠나 인정하고 싶다는 말, 그래서 Yes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만은 예스라고,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만 yes라는 그 말을 그 순간은 잊었다.
“헤어져, 그만하자 우리”
어떻게든 yes가 아니라 no를 듣고 싶었던 오기였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no를 하지 않고는 안될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승리의 여신이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내 눈을 응시했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고이는 듯 보였다. 그래! 이번에는 ‘NO!’라고 말하면 돼! 하고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그가 yes라는 대답을 하기 전까지 그랬다.
정말로? 진짜로? 이렇게?
“그래, 헤어지자”
“너 진심이야?”
그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지현아 그렇게 하자”
잡고 있던 손을 그가 놓았다. 아니 이게 말이돼? 야! 야!! 야!!!!
“너! 진짜 이러기야?”
내가 할 말은 따지는 게 아니라 미안하다며, 내가 미안하다는. 그런 말이었어야 했다.
“그래 헤어져!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절대로!!”
하고 돌아선 나였다.
아마 그는 그 뒤에서도 그래, 그렇게 할게. 했던 것 같았다.
나는 잠도 못 자고 회사도 못 나가며 두 눈이 왕눈이가 되어서 황제눈이가 될 때까지 텅텅 부은 채로 한동안 지내야 했다. 오죽하면 소식이 끊긴 나를 찾아온 친구며, 엄마며 내가 진짜 무슨 병이 생긴 줄 착각했을 정도일까.
그래도 전화하겠지, 미안하다고 연락하겠지 했는데 그는, 진짜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란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연락처도 바꿔버렸다. 진짜 개색히. 사람 말귀 못 알아듣는 놈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냐고.
그가 다니는 회사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퇴사를 했단다. 내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까지 천까지 만까지 모두. 마지막까지 Yes만 하고 진짜로 지킨 나쁜 새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사랑을 남겨둔 채 날 버린, 아니 내가 날 버리라고 시켜서, 그걸 그대로 또 지키는 천하의 몹쓸 새끼야.
돌아와….
너의 마지막 Yes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가 아니라, 내 눈앞에 당장 나타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