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 스타킹

키워드 글쓰기 - 18주 차.

by 라한

가리고 있었으나, 보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알아채 주었으면 하는 신호와 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던져놓은 그물망 같이 검게 변해버린 마음과 같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은 재가 되어버리는 걸까. 잿빛을 위하여 태워진 불꽃으로 자동차 매연보다 더했지만 이상하게도 검기보단 흰, 뿌연 연기가 하늘을 오른다. 그 연기 속에서 헤매다 얼굴을 드러낸 성훈이 주연을 바라본다.


“여자가 담배는 무슨.”

“남자가 담배는 무슨.”


서로 절대 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랬다.


“끊는다며. 매일 끊기만 하냐?”


주연은 대답 대신 입에 문 담배에 한숨을 크게 들이켰다. 볼이 쏙 들어간다. 그 들어간 자국들 사이로 자신의 마음이 들어가고 있음을 눈치챈 성훈이 고개를 돌려 애써 외면해본다.


비록 직접 마주한 얼굴은 아니더라도, 거울 속에 비친 주연의 모습마저도 아름답고 예뻐서, 이미 눈을 타고, 뇌 속에서, 마음으로 영원까지 가져갈 기세로 담아버린 성훈이었다.


“후~”

“아 입내 샤, 양치는 했냐?”


자신에게 입김을 불어내는 주연에게 손사래를 하며 담배연기를 털어낸다. 주연은 자신이 보낸 게 연기뿐만 아님을 왜 성훈은 모를까 생각해보고, 손사래 치며 거절하는 그 모습을 자신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야, 오늘 영하야. 곧 눈도 온다고.”

“눈? 첫눈이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했다. 첫눈을 함께 본 사람과의 사랑은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그 첫눈이 내리는 날,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가 성훈이었으니까.


“이런 거 입는다고 남자들이 안 좋아하거든?”


성훈은 자기만 보고 싶은 주연의 검은 망사 스타킹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주연은 그래, 다른 남자는 안 좋아하더라도 너는 좋아해 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다 좋아 죽더구먼, 오늘만 벌써 이렇게”


걸어오는 동안 자신에게 명함을 내민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 움큼 진 명함 더미를 꺼내 보이는 주연이었다. 성훈은 혹시라도 주연이 연락하지 못하게 냅다 명함들을 들어 찢어버렸다.


“겉모습만 보고 이렇게 연락하는 놈들 중에 제대로 된 놈 하나 없다.”

“왜. 너는 아니야?”

“나 뭐?”


주연이 살짝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 돌려 성훈을 보았다.

씩. 하고 한 번 웃어 보인다.


“그래. 넌.. 아니네”

“뭐가 아니야.”

“됐어. 재미없다. 나갈래”

“뭘 또 가.”


한 번도, 그래 본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유독 밤이 어두웠다.


검은 망사 스타킹이었지만,

붉어진 마음으로 뜨거워진 가슴이 시키는 대로. 성훈은 움직이고 말았다.


주연의 손목을 붙잡은 성훈.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성훈을 바라보는 주연.


밤이 깊었기에, 더 이상 망사 스타킹은 망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보일 듯. 말 듯이 아닌.


빛이 있는 곳에선 모든 걸 다 보이고.

빛이 없는 곳에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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