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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잘 지내고 있지”
퇴근길,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반갑기보다는 모질다. 온갖 걱정이란 포장으로 실려 오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 벅찬 수영이었다.
“이번 추석도 힘들 거 같아, 일이 너무 밀려서”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가고싶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그런 고향집을 처분하지도 못하는 수영이었다.
자신의 지난 세월이 모두 뭍어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만나는 유일한 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이렇게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은 그런 빈 집이 되어버린 수영이의 집을 보고 연락을 해오는 터일테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십여년전만 해도 동네에서 가장 번쩍이고 높고, 넓은 집이었으니까 눈에 안 띄는 게 어려울 지경의 집이었으니까.
“응, 그래, 다음에 보자”
공든 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너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쌓아 올리는 것보다 빨랐다.
부쩍이나 많아진 옛 친구들의 전화들. 며칠 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동시에 떠나보낸 수영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제는 봄이 와 찾아보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군고구마와 군밤, 그리고 붕어빵까지 한 번에 파는 아저씨를 본다.
수영은 아저씨를 보며, 몇 년전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린다. 가장 높은 단위의 현금을 꺼내 아저씨에게 건네고, 그 가격에 비해 모자란 양이었지만, 잔돈은 됐다고 하며 음식들을 받아 곧장 자리를 떠난다.
차게 식어버린 마음을 따뜻한 음식으로 얼마나 데울 수 있을까, 이미 안에 차 있던 그리움이 흘러가는데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
처음도 아니니까, 해볼 만하다. 이별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작을 정도의 상처다. 여섯 가족 중 셋이 먼저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서울에 진학한 언니를 위해 상경하던 도중이었다.
남은 건 오빠와 동생과 수영이었다. 그런데 며칠전 오빠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언니와 엄마,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자신과 동생을 돌보느라 자신을 도보지 못했던 오빠는, 재산을 노린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못했다.
그렇게 동생과 수영만이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데, 동생은 해외로 떠났다. 유학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 장례식이 끝나마자 바로 다시 떠나버렸다.
용기와 위로를 해줄 가족이 없는 두 사람이엇다. 서로에게는 어떻게 위로를 해야할지, 자기가 모르는 서로의 아픔을 괜히 건드리는 게 아닐까 조심해서, 아무말도 못하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위로였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본다.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게 나았을까, 문득 퇴근길의 하늘은 떠나간 겨울을 잊게 만들정도로 황홀하게 예뻤다.
“하아.”
한 숨을 크게 들이셨다가 내쉬는 순간이었다. 그 한숨소리에 반응한 것일까, 휴대전화가 울린다. 고향이 아닌, 지금 사는 동네에서 만난, 서울의 친구들이다.
“수영아 뭐해? 우리 오늘 방잡고 놀려고 하는데? 각?”
“응 각! 가자”
수영은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자기들끼리 수영이 올 것이라 확신하는 친구들이었다. 연인과의 이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정도로만 안다. 얼마전 수영이 가족을 잃었다는 건 모르는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친구들이었다.
“야, 너 와야 재권 오빠도 온다고 했다고, 너도 재권 오빠 좋잖아! 얼른 와!”
수화기 넘어 들리는 애타게 수영을 찾는 사람들, 수영은 전화기 넘어로 대답한다. “그래, 어디야 갈게”, 하면, ‘아니야 우리가 데리러 갈게!’ 하는 친구들,
그렇게 수영은 밤새 놀 친구들을 만나, 감정을 꾹꾹 눌러담고 멋지게 몸을 흔든다. 많은 남자들이 다가와 수영에게 인사를 하지만 수영은 무시한다. 재권이 옆으로 다가왔다.
“수영아, 괜찮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을 줄곧 따라다녔지만,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 그러나 부담스러운 재권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늘만큼은 조금의 마음을 허락할까 싶은 수영이었다.
“안 괜찮아요”
그럴 때 뒤에서 수영을 건드리는 한 남자, 수영과 재권이 모두 그를 본다.
“이렬려고. 내 연락 안 받았냐?”
수영이 그를 보고 한 껏 놀라고, 재권이 둘 사이에 끼어든다.
“당신이 뭔데, 얘 한테 이래라 저래라 예요?”
수영과 재권을 보는 한 남자,
“나요? 이럴 권리 있는 사람.”
“네? 수영아 아는 사람이야?”
재권이 수영에게 묻고, 수영은 손으로 입술을 가린 채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덥썩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에게 달려가 안는다.
“야야. 징그럽게...야.”
“아빠. 오빠.. 너무 보고싶었어.”
수영을 흔드는 친구에 밀려 잠에서 깬 수영,
“야, 괜찮아?”
수영이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깨고, 재권은 반대편에서 그 시선을 보고 아무말이 없다.
“수영아 괜찮아?”
꿈에서 보다가 다시 현실로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을까, 수영은 재권을 뚫어져라 보았다. 재권도 수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왜? 뭐 묻었나? 잘생김 이런 거?”
“오빠는 나 왜 좋아해요?”
“어..?”
“어머 야!”
친구들이 잠에서 깬, 수영에게 놀라 두드린다.
“취했네 취했어”
“응.. 취했어.”
자신을 살짝 때리는 친구의 손을 붙잡아 내려놓는 수영.
“나랑 사귀고 싶어요?”
“어..?”
수영은 희미하게 웃으며 재권을 보았다.
“근데 나는 오빠랑 안 사귀고 싶어요. 눈치를 몇 년째 주면 알아서 좀 사라지지.”
“... 수영아.”
재권은 놀란 표정과 함께 수영을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잘못했니?”
“아냐, 오빠, 수영이가 너무 취했네. 취했어”
“아니, 안 취햇다니까, 나봐. 이씌, 너 이리와봐”
갑자기 재권의 얼굴을 끌어당기더니,
냅따, 입술을 맞춘다.
입술 사이로 벌어진 틈 사이로, 자신의 것을 집어넣는 수영,
너무 당황한 재권과 주변 친구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상체가 세모 모양으로 기울어진 두 사람과, 그 두사람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수영은, 지난 전시회에서 본 문구를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재권의 입술을 여행하고 있었다. 재권은 두 팔이 갈 곳을 잃었다가, 곧 수영의 손을 마주 잡는다.
수영의 몸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할 때, 수영이 두 팔을 밀어내고 입술을 떼고 재권을 쳐다본다.
그리고 물을 먹고 행구듯 뱉어버린다.
“...”
재권은 멍하니 쳐다본다.
그리고 재권의 뺨을 한 대 때리는 수영.
“내가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이제 좀 꺼져”
자신의 가방을 챙겨 불빛 반짝거리는 지하를 걸어나오는 수영이었다.
어느덧 햇살이 반짝 피어난 도시의 거리.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수영은 안에 있던 모든 걸 토해낸다.
응어리진 모든 마음이 한번에 튀어 올라오듯 엄청난 고통을 선사한다.
“우우에에익, 우에에엑”
수영이 걱정 되어 쫓아온 친구는 또 수영의 모습을 보고 황당해한다.
수영은 또 웬 모르는 사람에게 구토를 시전했고, 그 사람은 처음엔 당황하더니
구토를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수영의 등을 두드려 주는 지경에 이른다.
“이봐요.. 아씌. 괜찮아요? 아놔. 더러워서. 아우. 괜찮아요??”
수영은 남자의 손을 꼭 붙잡고, 열심히 토해내고 있었다.
있던 것을 꺼내려니,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인것일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