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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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언제나 시작됐고, 언제나 끝이 났다. 고 생각했다.


90년. 장벽이 무너졌다. 한 도시 안의 두 국가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91년. 철의 장벽으로 시작해 세계를 둘로 나눴던 하나가 사라졌다.

92년. 세계대전이나 냉전시대를 겪지 않은 아이들이 탄생했다. 신인류였다.

93년.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있었다. 유럽연합이 탄생했다.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됐다.

94년. 뜨거운 폭염. 한양이 나라의 도성이 된지 정확히 600년이 흘렀다. 성수대교가 끊기고 김일성이 죽었다.

95년. WTO가 출범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96년. 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바뀌고 캐리비안 베이가 시작된 한 해였다. 조선총독부가 완전 철거됐다.

97년. 아시아의 사대용이었던 한국이 IMF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금융위기를 인정했다.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었다.

98년. 학생들의 가방에 태극기가 달렸다. 사람들이 자신의 금부치를 국가의 부채를 위해 내놓기 시작했다. 98년. 오백원권이 단 8,000개만 발행되었다.

99년. 유명한 예언가의 세계 종말의 해. 세기말의 해. 한국의 인터넷이 시작됐다.


바람에 불어 휘날리고 있는 연, 그 연을 붙잡고 있는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삼촌! 도와줘 삼촌!”


아이가 버티는 모습을 귀엽다며 바라보고 있는 삼촌이었다. 아이에게는 삼촌은 어른이었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금만 놓치면 바람에 져 연을 날려보낼 상황이었다.


“한솔아 조금 더 힘을 줘봐!”


그사이에 바람이 한바탕 불어와 실타래를 놓친 한솔이었다. 실타래는 굴러가면서 풀렸고, 결국 연은 이제는 붙잡을 수 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앙”


한솔의 눈물에 삼촌이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연이야, 또 사면 돼”

“으아아앙, 내가 처음 만든 연이라고!”


바닥에 발을 동동차며, 울부짓는 조카 한솔을 살살 웃으며 달래보았다.


*


언덕위에 나무는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 나무가 사라진 이후를 꿈꾸는 사람들이 없는 한, 말이었다.

나무를 둘러보는 어른 들 사이로 두 손을 맞잡고 뛰어다니고 있는 아이들.


“여기에 아파트가 들어선단 말이지?”

나무를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

자신이 받은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여기 대단지가 들어설거야”


아이 둘은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잡았다, 쫓았다, 놓쳤다 하고 있었다.


*


오백원을 주며 한 컵에 담긴 떡복이를 먹는 재영,


“여깄다!!”

“잘먹겠습니다!”


아주머니가 내민 떢복이에 이쑤시개를 쑤셔 자신의 입에 넣어 먹는다.

노점의 바깥으로 바람이 불었고, 다시 돌아보자 어느새 시간은 흘러 있었고,

재영은 이제 중학생 정도가 되었다.


천원을 몇 장 내밀고, 조금 커진 컵에 떡볶이를 받아먹는 재영.


“감사합니다.”


재영은 다시 포장마차를 나간다. 포장마차는 낡아 사라지고, 어느새 노점이 있던 자리에는 번쩍번쩍 빛이 나는 건물이 들어선다.


포장마차가 있던 장소는 번듯한 가게로 바뀌었고, 떡볶이를 만들던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고용된 알바들이 서둘러 조리를 하고 포장을 해 놓은 채 주소를 걸어놓는다. 주문자를 보면 재영이다.


“아 떡볶이 요즘 너무 비싸, 치킨보다 비싸 졌어.”


2만원짜리 떡볶이를 주문한 재영, 기다리던 소리가 울린다. 초인종 소리였다. 배달된 떡볶이를 받아 든 재영은 서둘러 냉장고에서 맥주 캔 하나를 꺼내, 상위에 차림을 한다.


“떡볶이 먹어!”


재영의 목소리를 들은 원과 연이 나와 자리에 앉는다. 희선와 한솔과 하권도 나온다. 그때 초인종이 울리고, 재영이 누 군지 내다보면 양손에 회를 가득 든 수영이었다.


"다들 오고있대"

“왜 이렇게 늦었어!”


재영이 문을 열어 한빛을 마주하면, 한솔은 휴대폰을 보고 있다.


“뭘 그렇게 보냐”


한솔이 보고 있는 화면에는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와,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공원 갔었어?”

“어 거기서 연을 날리던 아이가 있더라구”

“그래? 거기 연 날리기 좋은 곳이지”

“나 때는 거기 놀이공원이었는데”


한솔은 연을 날리던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엄마, 이러다 연이 구름에 걸리면 어떡해?”


그러면서 자신이 처음으로 만들어 하늘로 떠난 그 연은 지금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까 하는 바보 같은 상상을 했다.


’아직까지. 그럴 리가 없지...‘


떡볶이에 회에, 김치전에 차려진 술상과 안주들에 건배를 하는,

90년대의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가 기억하는 시간은 다르더라도, 서로가 추억하는 기간이 같기에.

바람에 날렸던 연은, 어쩌면 생텍쥐페리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 아직도 하늘을 항해 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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