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원 연구실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연구실이 조직된 이래, 지도교수님께서 처음으로 받은 타과생이라 모든 연구실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남자 선배들 틈에 앉아 있던 그녀의 모습이 내 눈에 제일 먼저 띄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굉장히 차가워 보였고, 냉철해 보였고, 단단해 보였다.
실제로 그녀는 정말 냉철했고, 단단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여자후배들을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해 주었다. 학과 특성상 남자들 틈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했던 그녀는 치열하게 길을 닦으며 거기까지 가 있었고, 그 덕에 여자 후배들은 편안하게 그녀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예전에는 없었다는 "평등"과 "공정"을 누리고 있었다.
그녀가 했던 일들 중에 내가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배려를 받은 것이었다.
그녀의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뒤이어 연구실에서 두 번째로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한 여자 대학원생이 되었던 나는 그녀의 중재로 교수님과 다른 남자 선배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시간적인 배려도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때만 하더라도 실내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제재가 없었기 때문에, 세미나 중에도 담배를 피우는 교수님들이 종종 계셨다. 그녀가 임신 중일 때는 그런 간접흡연에 시달려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임신을 했을 때는 그녀가 나서준 덕에 연구실 남자 선배들,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담배를 연구실 밖에 나가서 피우셨다.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출산하기 하루 전까지 연구실에 나왔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음에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연구실에 복귀해 책임자로 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해냈다. 반면, 내게는 출산 후 3개월간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연구실 최초 특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서 겪은 불합리함들을 여자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반면, 그녀 자신은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수 임용도 그랬다.
이론에 실무능력까지 겸비한 보기 드문 인재라고들 칭찬하면서도, 최종 면접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아랫기수 후배와 경쟁이 붙은 모 대학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서류제출을 포기하라고 종용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녀를 롤모델로 꼽았던 많은 후배들이 그녀의 실패를 함께 아쉬워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담담했고, 여유로웠다.
"마흔 살까지만 도전해 보려고."
여자 후배들과 점심을 같이한 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만 꾸고 있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으니, 마흔 살이 되는 날까지만 도전해 보고 그 이후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매진하기로, 동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형부(그녀의 남편)와 약속을 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서 "씁쓸함"을 봤다.
끝내, 그녀는 교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과 실력은 소문이 났고, 덕분에 원래 하고 있던 일들에, 여자라서 할 수 있는 일들(여성 전문가 TO가 필요한 일들)이 더해져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너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늘 활기찼고,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사는 것 같아, 모두들 그녀를 존경스러워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를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까맣게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