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간 어때?"
그녀의 잠적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잊히고, 약 1년이 지난 어느 날, 내게 그녀가 전화를 했다. 사실 그녀의 잠적 사건 이후, 나는 그녀에게 자주 전화를 해 안부도 묻고 가끔 밥도 먹던 사이라, 그 전화 또한 가볍게 만나자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언니가 부르시면, 당연히 시간 내야죠."
"그럼, 우리 차 한잔 할까? 사무실로 올래?"
그렇게 해서 그녀 사무실에 처음 방문을 했는데, 넓은 사무실에 직원이 5~6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얼마나 많은 일들을 과거에 했는지, 지금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과물들이 곳곳마다 가득 차 있었다.
"와, 생각보다 크네요?"
"혼자 쓰는 게 아니라서."
"아, 그렇군요."
그녀는 커피 한잔을 내 오겠다면서 나가더니 뭔가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OO이(울 아들 이름을 알고 계셨다.)는 기숙사 있다고 했지?"
"네. 주말에는 집으로 오고요. 평일에만."
"평일엔 그럼 심심하겠네?"
"아니요. 안 심심한데요. ㅎㅎ"
"O박, 심심하자. 이것 좀 도와줄 수 있게."
그녀가 내게 내민 것은 다른 지역 도시 사업에 관련된 것이었고, 설명에 따르면 근처에도 이와 비슷한 사업을 추진 중이라 국토부에 제출하는 제안서를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많은 건 알지?"
"그러니까요. 작년에 분명, 일 줄이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일을 더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도와줘. 보고서 거의 다 썼는데, 편집하고 마무리 작업을 할 시간이 없어. 도와줄 거지?"
"네, 뭐. 마무리하는 거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좋아."
그렇게 해서 나는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 동안, 오전에는 그녀의 사무실에 출근해서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주로 재택근무를 하며 보고서를 마무리하는 작업을 도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그 제안서가 국토부 승인이 나서 관련 센터가 세워졌고, 그 센터의 초대 센터장으로 그녀가 선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와줄 거지?"
보고서가 잘 통과되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밥을 사신다고 해서 나왔는데, 대뜸 또 도와달라고 하셨다.
"뭘요?"
"나, 거기 센터장으로 가기로 했는데, 사무실도 운영해야 해서 매일 출근할 수가 없어. 그래서 센터장 부재 시 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해. 구청에서는 비서 겸 사무국장의 직책을 주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을 찾고 있어. 딱 O박이면 될 것 같은데."
"제가요?"
"매일 출근할 필요 없고, 페이도 잘 쳐줄 거야. 출근날짜도 유연해서 OO이 학교에 볼일 있으면 언제든 갔다 와도 돼. 출근 일수만 맞추면 되도록 구청하고 이야기 다 해놨거든. O박만 오케이만 하면 끝나는데..."
그녀는 정말 절실해 보였다.
몇 년 전에도 자신이 주관하고 있는 주민 대상 워크숍에 강사로 와달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아이를 핑계 대며 거절했었다. 여전히 극 I형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뒤에서 돕는 건 해도 앞에 나서서 주민분들과 어울리는 건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번엔 핑계 댈 아이도 없고, 사실 슬슬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좋은 자리를 제안해 주신 거였다.
"과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연구원들도 뽑을 거라서,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은 없을 거야. O박이 해줄 일은 내가 부재 시 센터에 일어나는 일들을 컨트롤해 주는 것이고, 나랑 같이 연간 프로그램계획을 짜서 기획서 제출하면 돼. 그런 건 잘하잖아?"
"음..."
"그리고, 나는 이 센터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거든. 그때 내가 말한 연구소 프로젝트."
"아~. 우리 연구실 사람들 모아서 만들고 싶다던 그 연구소요?"
"응. 이 센터에서 하는 일들에 연구실 사람들의 역량을 좀 끌어 쓰면서 조금씩 확장을 해나가려고. 한 2~3년쯤이면 작은 협동조합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를 따라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꿈꾸던 큰 그림 안에 연구실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입성을 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센터 일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연구실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소식이 뜸했던 연구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건 센터 일을 하면서 생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물론, 모든 일들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창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주민들과 할 수 있는 일 혹은 센터의 홍보 같은 것들을 맡겼고, 놀고 있는 석사 혹은 박사에게는 보조 역할을 하는 아르바이트라도 챙겨주었다. 그리고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선배들과 후배들에게는 센터에 자문이나 심사자로 불러들여 다시 한번 연구실의 구심점을 만들었다.
차츰, 나와 그녀가 큰 그림을 그리며 모 센터를 운영 중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연구실 사람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더해졌다. 정말로, 협동조합이라도 결성해서 작은 일부터 해보자는 의견들이 전해졌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우리에게 코로나는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었다.
연구실을 재건해 보겠다고 모인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북극의 냉기로 꽁꽁 얼려버리는 재앙이었다.
결국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해보자며, 모두들 한 발짝씩 물러났고, 그녀의 큰 그림은 더 이상 실현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