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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라졌다.

by My Way

아무도 그녀 맘을 몰랐다.

그렇게나 살뜰히 챙겨준 나조차도 살기 바빠서, 애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버거워서 그녀의 마음까지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로부터 "그녀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선배, 혹시 OO선배 연락되세요?"

"아니,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학교며 구청이며 난리 났어요. OO선배가 사라졌어요."

"사라지다니?

"지난주까진 분명 연락이 되었는데,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아예 전화기가 꺼져있어요. 원래 오늘도 OO선배랑 저희 연구실이랑 하던 프로젝트 미팅이 있는데, 일단 미뤄졌고요, 구청에 아는 분이랑도 통화했는데 어제 회의도 불참하셨데요."

"그런 분이 아니잖아?"

"그러니까요. 일하면서 지각 한번 안 하시던 분이 이러니까 다들 사고 난 거 아니냐고..."

".... 형부는? 학교 강의 나오신다며."

"그게 입을 꾹 다물고 계세요. 친했던 사이가 아니라서 그냥 OO선배 별일 없냐 물었는데 약간 당황한 표정만 지으시고 대답을 안 하세요."

"뭐지? 진짜 뭔 일 있으시나?"


그날 이후 약 한 달 넘게 그녀는 자취를 감췄다.

심지어 중간에 휴대폰이 해지되면서 없는 번호라고 뜨는 바람에 온갖 소문들이 무성했다.


연구실 사람들도 초반에는 OO선배를 찾느라 이곳저곳 수소문을 했지만, 가장 확실한 정보통인 그녀의 남편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더 이상 그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사고, 입원, 수술, 별거, 이혼, 급기야는 사망설까지 돌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았는데, 그녀였다.


"뭐예요? 진짜."

"걱정했지?"

"그럼요. 다들 아프신 건 아닌지, 큰일 난 건 아닌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미안."

"무슨 일 있으셨어요?"

"... 좀 아팠고. 아픈 김에 일도 좀 줄이고 인간관계도 정리할 겸 휴대폰 번호를 바꿨어."

"아, 그랬구나. 잘하셨네요. 일을 좀 줄일 때 됐죠, 이제. 그래서 아픈 곳은 다 나으신 거예요?"

"응, 이제 괜찮아. 벌여놓은 일들 마무리부터 하고 다른 것들은 좀 자제할까 봐."

"진짜, 다행이에요. 시간 되시면 얼굴 한번 봐요, 우리."

"그러자."


다시 그녀가 활동을 재개하자, 그렇게 무성했던 험한 소문들이 쏙 들어갔다.

며칠 뒤 그녀를 걱정했던 후배들이 모두 모였고,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안심했다.

그녀 말처럼 너무 과부하가 걸려 잠시 쉬다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휴대폰까지 바꿔가며 인간관계도 정리하고, 일도 정리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주변 상황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냉정해 보이고 냉철해 보이던 외모와는 달리 거절을 잘 못하던 그녀는 결국 새 휴대폰에 다시금 연락처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사라졌던 한 달 전보다 더 바빠 보였다.

하지만, 다시금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아 모두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잊어갔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녀가 사라졌던 건 몸이 아픈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왜 나는 그때 그 이상했던 실종사건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까.

그때라도 알아차렸다면, 좀 더 면밀히 그녀를 살펴봤을 것 같은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이때, 그녀의 실종사건 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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