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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날

by My Way

믿기지 않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는 망연자실해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고, 되려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장례식장은 어디예요?"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물은 내 질문에 박대리는 어처구니없는 답을 내놨다.


"오늘 발인을 끝내셨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사실,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발인까지 마치는 동안, 직원들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어제는 출장이 있으셔서 안 나오시는 날이라 몰랐고, 다들 오늘 보고드릴 게 있어서 기다렸는데 시간이 되어도 안 오시길래 전화를 드렸더니 남편분이 받으시더라고요. 일요일에 "돌연사"로 돌아가셨고, 코로나시기라 가족끼리 조용하게 3일장 치르고 오늘 새벽에 발인까지 마쳤다고..."


물론,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렇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부고는 알리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른다고 양해를 구했던 것 같은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례절차를 모두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뭔가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한참 동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죄지은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박대리 모습,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어린 연구원들이 보였다.


"박대리님, 센터까지 직접 와서 소식 알려줘서 고마워요. 진짜 전화로 이야기했으면 안 믿었을 것 같네요. 고마워요. 그리고, 저기, 김연구원. 구청에 전화해서 센터장님 부고 소식 알리고, 음... 이 연구원은... 음... 아무래도 이번 주에 계획된 거 모두 보류해야겠지? 담당자들에게 전화해서 미팅들을 다음 주로 미뤄줄래? 그리고 나는..."


박대리가 돌아가고 난 후, 뒤늦게 소식을 접한 사람들로부터 확인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센터로도 전화가 왔지만, 최근까지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람이 나라는 걸 아는 주변 지인들이 뒤늦게 소식을 접했다며 연락을 해왔는데,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진짜야? 아니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으며, 누구보다 능력 있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에 모두가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들 발인이 끝났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아니, 어떻게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할 수가 있어? O 소장님 인맥이면 이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참석할 판이구먼, 왜 그랬데?"


동종업계, 관련 분야, 지자체, 학교, 할 것 없이 그날은 하루 종일 뒤숭숭했던 것 같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전화통화를 했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진짜야? 아니지?"

"어떻게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하고 장례절차를 끝낼 수가 있어?"


무슨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장례가 너무 비정상적이었던 것은 팩트였다. 급기야 "사인(死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내 귀에까지 흘러들어왔다.


"자살이라며?"

"누가 그래요?"

"이미 알 사람은 다 안다던데? 그래서 장례도 그런 식으로 해버린 거라던데?"

"코로나 때문에 요즘 그렇게들 많이 하잖아요?"

"에이, 그래도 부고는 알리고 그렇게 하지, 진짜 아무한테 안 알리고 발인까지 마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

"왜에, 몇 년 전에도 한 달 넘게 잠적한 적 있었잖아? 그때도 자살시도한 거였다는데?"

"아니거든요."

"혹시, 정말 전조증상 같은 거 없었어? O박이 제일 친했잖아. 그리고 센터에 항상 같이 있었으니까 뭔가 평소와 달랐다 하는 거 있었을 거 아냐."

"평소와 달랐던 거? 글쎄요. 음... 제가 마지막에 언니를 본 날, 그림 이야기 한 거밖에 없어요. 자신의 기분을 잘 드러내주는 그림이라고 하면서 보여줬어요. 슬프고, 고독하고..."

"그거네. 증상을 보였던 거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날은 그랬지만, 언니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알지. 나도 같이 뭉쳐보자는 전화받았는걸? 근데, 그 모든 게 코로나 때문에 다 어그러진 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자살은 좀... 충격이긴 하다."

"아니에요, 자살."

"어떻게 확신해?"

"선배도 확실한 거 아니잖아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이상한 소문 퍼트리지 마세요."

"아니,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지금 그렇게 소문이 퍼졌다니까."


그 소문은 계속 돌고 돌아 결국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살을 했다.

심지어는 마치 그녀의 자살 순간을 직접 본 것처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분명, 동종업계에서 일하던 그녀의 남편도 이런 소문을 들었을 텐데, 이번에도 반박 한번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내게 이미 상처였지만, 그녀가 정말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거라면 거기엔 내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그랬다.

내가 가장 그녀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내가 가장 친했던 사람이고, 항상 곁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솔직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녀에 대해 많이 알긴 했다.

하지만, 진짜로 내가 알던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었을까?

밖에서는 늘 웃고 활기찼고, 당찼던 그녀가 집에서는 시체나 다름없다는 걸 나는 들어서 알뿐, 실제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정말 그녀가 자살한 거라면, 나는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당장 센터장이 했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향후 센터 운영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야 해서, 그녀에 대한 제대로 된 추모도 하지 못한 채 매일매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자꾸 이상한 소문이 돌고 그 소문이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하자, 나도 점점 중심을 잡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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