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라, 잠깐 하던 일에 여유가 생겼지만,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녀가 봄바람과 함께 센터로 들어왔다.
"나랑 산책할래?"
"아니요."
"잠깐, 쉬자. 밖에 바람이 너무 좋아."
"센터장님, 안 바쁘세요? 내일까지 구청에 내야 하는 서류, 확인 아직 안 해주셨는데요?"
"좀 있다 볼게. 산책 가자~~."
"꽃가루 알레르기 있음다."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서,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하루를 초단위로 쪼개 쓰던 사람이 뭔가 나른하고 여유 있어 보여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봤다.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어젯밤에 내 맘에 쏙 드는 그림 한 점을 찾았거든. 그 그림, 유명한 작가가 그린 건 아니지만, 몽환적이면서 뭔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그 그림 때문에 밤잠을 설쳤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네. 너도 볼래?"
그녀가 보여준 그림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하지만 그녀가 "몽환"이란 단어를 쓴 이유를 알 것 같은 그런 그림이었다.
지금은 원래의 꿈과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던 그녀는 가끔 이렇게 마음에 드는 그림이 생기는 날에는 센터에 와서 내게 그림을 보여주며 몇 날 며칠이건 그 그림 이야기만 했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인 줄 알았다.
"O박, 이것 좀 봐봐. 너무 예쁘지 않아?"
"음... 저는 잘... 그 뭐냐. 물에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데요?"
"맞아. O박도 모르는 척 하지만, 그림을 느끼는 거라니까? 이 몽환적인 느낌. 너무 예쁘지 않아?"
"유명한 사람 작품이에요?"
"아니. 처음 들어본 화가의 작품이야. 그런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갖고 싶어 졌어."
"몽환적이라서요?"
"내 기분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언니 기분이 지금 이렇다고요?"
그 그림은 파스텔톤의 여러 색깔들이 실크옷감처럼 나풀거리며 도화지 전체를 수놓고 있었다.
마치 실물 같은 재질이며 부드러움을 물감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놀라웠지만, 사실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그림이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밤새 한숨도 못잖어."
"왜요? 설마 이 그림 때문에요?"
"응."
"너무 예쁘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슬프고, 너무 고독해 보이잖아."
그때,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당장 해야 할 일 앞에서 그녀의 감정을 싹둑 잘라버리는 말을 뱉었다.
"그 그림이 잘못했네. 결재해야 할 문서가 이렇게 산더미 같은데, 센터장님 잠도 못 주무시게 하고."
그녀는 희미하게 웃더니, 그 그림을 거두고 책상 앞에 앉아 내가 내민 서류들과 쌓여 있는 서류들에 결재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산책을 가자고 했을 때, 그녀와 나갔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있든 없든, 그 순간만큼은 봄바람을 맞으며 함께 걸었어야 했다.
몽환적인 그 그림이 그녀의 기분을 표현한다고 했을 때, 내가 좀 더 그녀의 감정을 면밀히 살폈어야 했다.
아니, 평소와 달랐던 그녀의 모습을 센터에 들어오자마자 알아차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