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말이 오가고 서로의 집을 가끔 들락거리던 시절, 예비 시어머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누가 먼저 좋아했니?"
사실, 긴 연애기간 동안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어서 적잖게 당황했다.
하지만, 곧 모범답안을 생각해 내었다.
"제가 먼저 좋아했습니다."
예비 시어머님께서 듣고 싶으셨던 게 저 말이 아닐까 내심 추측해서 말씀드린 건데, 생각보다 꽤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거기에 한술 더 떠, 또 물으셨다.
"지금은 누가 더 좋아하니?"

'뭘 알고 싶으신 걸까?'
나는 예비 시어머님의 질문이 액면 그대로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으신지 정확한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땐 어렸고, 모든 것이 낯설었으며, 생경했기 때문에 울 신랑(그 당시 남자친구)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어딜 갔는지 그 순간 그 자리에 없었다.
결국 생각 끝에, 망설이며 대답했다.
"제가... 더 좋아합니다."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대답했는데, 내 대답이 흡족하셨는지 예비 시어머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내내 궁금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으신 걸까?
큰 아들에 대한 자부심? 아들이 더 사랑받길 원하는 욕심?
그땐 정확히 몰랐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울 아들에게 썸 타는 아이가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누가 먼저 좋아했어?"
Oh, Sh...!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에,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아, 이런 기분으로 물어보신 거구나!'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사랑이 서로 주고받는 사랑인 건지, 한쪽으로 기운 사랑인 건지, 기울었다면 누구의 것이 더 큰지... 뭐 이런 게 나는 궁금했다. 진심, 순수한 호기심으로다가.
그래서, 누가 먼저 좋아했다고 한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울 아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제가요. 비공식적으로는 OO이가요."

이 무슨 우문현답인가....
엄마의 기분을 배려한 대답인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으로 기울었든 상관없을 것 같던 마음이 아이의 대답에 한결(?) 편안해졌다.
아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못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울 신랑이 내 표정 변화를 읽은 것 같았다.
마주 앉은 울 신랑이 눈을 반짝거리며 날 봤다.

마치 '나는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는 것처럼...
'뭐어~ 우짜라고.'
무언의 눈짓이 몇 번 더 오고 간 후, 생각이 많아졌다.
품 안의 자식이었던 아이는 이제 자신만의 세상에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고, 우리와는 다른 결혼관과 인생관으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솔직히 아이가 어릴 때는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평생 우리와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는 남주기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결이 잘 맞는 짝꿍을 만나 평생 외롭지 않게,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면 좋겠다.
그러니, 결국은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현명한 시어머니,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주도록 말이다.
"누가 더 좋아했니?" 이런 말은 이제 그만 내 안에 깊숙하게, 찾을 수 없게 넣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