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과 육아 사이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가 "야망을 가져라."였다.
학위과정에서 쓴 논문들을 들고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리며 교수 자리를, 하다 못해 강사 자리라도 구해보려고 애쓰는 선배들과 달리, 나는 육아와 경력 사이에서 꽤 오래 고민하느라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아마도 그 모습이 남들 눈에는 한심해 보였던 것 같다.
"그럼 박사학위를 왜 딴 거야?"
그 말에 상처받았지만, 나는 결국엔 내가 아닌 아이를 선택했고, 단절된 경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쉰 적은 없다.
9 to 6의 삶은 아니었지만,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해왔다.
시간강사 자리가 나면 어디든 달려갔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받아 들고 왔다.
나의 박사 타이틀 때문에 페이를 부담스러워하면 시간을 조절해서라도 일거리를 맡아했다.
내 일자리의 최우선 조건은 아이와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그다음이 내 쓸모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경제적인 도움까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 눈에는 주먹구구식이었고, 중구난방의 경력이 쌓였으니 쓸데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때만큼은 그게 최선이었다.
그런 내 곁에, 내 상황을 항상 안타까워하시면서,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시는 교수님이 두 분 계셨다.
그중 한 분은 나와 가치관이 맞아 육아를 하는 내게 늘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고,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주선해 주셨다.
하지만, 다른 한분은 내가 육아에 올인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셔서 늘 잔소리를 하시면서 나의 경력면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육아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주선해 주셨다.
나의 계속된 거절에, 교수님께서는 결국 한마디를 하셨다.
"O박사. 애는 전문가한테 맡기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 좀 하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무렵이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에 순간 "욱"하는 성질머리가 올라왔다.
제 아이에 있어서만큼은 제가 전문가인데요?
저는 제 일도 중요하지만 제 아이도 중요합니다.
아직 어려서 제 손길이 많이 필요한데, 제 경력 쌓자고 그 손 놓을 순 없습니다.
주시려던 일 너무 감사하지만, 제 아이를 포기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그 모든 말들을 삼켜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신랑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길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회사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회사생활이 다소 힘겨웠는지 회사 일과 회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길 내게 해 주었다.
그러다, 같은 연구실 출신이면서 회사 연구소에 먼저 입성한 선배가 울 신랑에게 했다는 말을 들고,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OO선배가 나한테 야망을 가지라네."

"아니, 왜 사람들은 우리만 보면 야망을 가지라는 거야? 야망이 없으면 안 되나?"
"그러니까. 나는 가늘고 길게 갈 건데."
울 신랑은 나와 띠가 다른 동갑이라, 남자 나이 기준 제법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석사과정일 때 결혼을 했고, 박사과정일 때 아이가 태어났다.
20대 후반에 한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결국 박사과정 중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게 되었고, 나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기에, 나는 울 신랑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결국 우리는 육아와 경력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를 잘 넘겨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는 맞춤형 전문가인 엄마 손에서 잘 컸고, 울 신랑도 아직까지는 가늘고 길게 잘 버티는 중이다.
비록 지인들은 우리를 "야망 없는 부부"라 부르지만, "야망", 그게 꼭 있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현재를 열심히 살며,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평범함 속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