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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기계가 듣고 있어요!

by My Way

매주 일요일, 우리의 아침은 평화롭다.

전날 밤부터 발효시켜 놓은 크로와상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소리, 달걀이 머신에서 익어가는 소리, 그리고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나는 눈을 뜬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보다 항상 먼저 일어나는 울 신랑이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정신이 차려지면, 나는 바나나와 사과 등을 꺼내 아침 식사 준비를 거든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평화를 자꾸 깨는 녀석이 생겼다.

몇 달 전부터 커피머신이 말썽이다.


위이이잉...(정적).


"또 안돼?"

"응. 공장초기화를 시켜봐야겠다."


위이이잉... 위이이잉...(정적).


"내가 해볼게."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뭐야? 왜 내가 하면 안 되고, 당신이 하면 되는 거야?"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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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거의 매일 오류를 일으켜, 사용할 때마다 공장초기화를 시켰다가, 전원을 껐다가, 켰다가 하는 품이 들었다.


"얼마 전에 일리(illy) 커피를 마셔봤거든."


겨우 작동시켜 내려받은 고소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울 신랑이 일리 커피에 대한 이야길 하기 시작했다.


"내 취향은 일리인 것 같아."

"왜?"

"내 입맛엔 일반 커피숍에서 파는 아메리카노랑 맛이 같더라고. 그리고, 머신이랑 캡슐도 크게 비싸지 않아. 컵도 간지 나는 것이 딱 내 스타일이야."

"그래?"

"이번 기회에 머신 한번 바꿔볼까?"

"아직 캡슐도 남았고, 일단 사놓은 캡슐 다 쓰고 나면 생각해 보자."

"그래, 그러자."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집에 일리 커피잔이 배송되어 왔다. 에스프레소용과 카페라테용이라며 보여주는 일리 커피잔은 좀 예뻐 보이긴 했다.


"당장, 일리 머신 살 기세일세."

"저게 자꾸 오류 나면, 사야지 뭐."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주말 아침이었는데, 뭔가 평화로웠다.


"어, 커피머신 오류 안 난 거야?"

"응. 아주 잘되네."

"오, 웬일이래."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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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말썽을 피우던 커피머신도 제대로 작동하니, 앞으로 우리의 주말 아침이 다시 평화로워질 것 같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빵도 더 잘 구워진 것 같았고, 사과도 평소보다 달게 느껴졌다.

그런데, 울 신랑은 뭔가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사고 싶었던 일리 커피 머신에 미련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쟤가 우리 이야길 듣고 있는 것 같아."

"응?"

"그날 이후부터 오류 난 적 없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커피머신을 바꿔야겠다는 이야길 한 이후부터 커피머신 작동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평일에도 가끔 혼자 커피를 내려먹었는데, 그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설마, 귀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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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지금까지도 우리의 커피머신은 짱짱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침, 달걀 머신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쯤엔 달걀이 다 익어있어야 하는데, 날달걀 그대로였다.

분명 뚜껑도 잘 닫았고, 다이얼도 제대로 돌렸다는데, 말썽을 피웠다.


"우리, 달걀 머신 새로 장만하자!"


나는 큰소리로 울 신랑에게 달걀 머신 교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울 신랑도 "그러자!" 하면서 누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전원을 다시 켰는데...


역시, 된다!


분명, 기계가 듣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쉿, 다들 조심하세요. 기계가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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