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 ♥ ISFJ ≠ ENTJ
알아서 할게요.
아들이 처음 저 말을 했을 때, 내 마음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 친구 엄마들이 "알아서 할게요."를 입에 달고 산다고 불평을 할 때도, "알아서 한다고 말만 하고 알아서 하는 걸 못 봤다."며 불만을 이야기할 때도,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라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 입에서 저 문장이 나오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섭섭했다.
아이와 나 사이에 연결된 그 무엇이 '툭'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머리로는 저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아이가 성장했다는 의미이고,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저 말만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사실, 아들의 변화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잘 웃고, 애교 많고, 늘 흥이 많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키가 훌쩍 크고, 목소리가 변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춘기 소년의 모습은 아니었다.
반항을 하지도 않았고, 큰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말수가 줄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고, 웃는 날보다 무뚝뚝한 표정인 날이 많아졌을 뿐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데다가 말수까지 줄어드니, 도통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교육과 정서적인 측면에서 내가 끼어들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서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며 아이의 생각에 공감하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결코 잔소리를 한 게 아니었는데, 내 말 뒤끝에 "알아서 할게요."라고 반응한 것이었다.
서운한 마음이 차고 넘쳐 얼굴에까지 번졌는지, 아니면 축 처진 내 어깨에서 서운함이 흘러내렸는지, 안방에 있던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뭐라고 했길래."
"알아서 한데."
"그럼, OO이가 알아서 하겠지."
그날 밤, 남편은 내 마음에 전혀 공감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섭섭해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알아서 할게요."는 아이와의 대화 중에 자주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그럴 때마다 내게 작은 생채기를 남기곤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들의 "알아서 할게요."가 공염불인 경우가 드물어서, 나도 점차 아들을 신뢰하며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다 커버린 지금도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을 들으면 명치 어디쯤에서 스멀스멀 서운함이 기어올라오려는 걸 느낀다.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가 알아서 한다는데, 그게 뭐 그리 서운하다고 그런 감정이 올라오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다, 발견했다. 그 이유를.
["오늘 너 없어도 돼"라는 말을 들은 MBTI별 반응]
ISFJ, INFP, ISFP, INFJ
아... 그래...! 잘 놀아...(속으로 서운함 MAX)
ISTJ, ISTP, INTP, INTJ
ㅇㅋ~. 그럼 간다?(표정은 무표정)
ENTJ, ESTP, ESTJ
좋아~. 시간 생겼다! 간다.
ENFP, ESFJ, ENFJ
엥? 진짜? 나 빠져도 괜찮아? 진심이야?
ENTP
뭐야, 나 없이 재밌으면 삐진다.
ESFP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빠지면 노잼임!!!
정확하게 일치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너 없어도 돼."라고 한다면, 서운함이 MAX인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네. 내가 그 말에 서운했던 건 ISFJ라서 그랬던 거네...'
사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그렇게 서운했던 이유를 내 안이 아닌 밖에서 찾고 보니 왠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울 아들의 쿨했던 반응이 나와의 관계 문제가 아닌 ENTJ라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면, "MBTI 중독자 같으니라고." 할 테지만...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
정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