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큰 유치원이 몇 달 전 문을 닫았습니다. 아무래도 저출산으로 아이들 수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근처에서 원어민 교사가 수업하는 사립 영어 유치원은 여전히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현상만으로 영어 유치원의 위력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제가 아이를 키울 당시에도 영어 유치원의 유혹이 분명 존재했던 만큼 이 현상이 허투루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세돌을 지나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저는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 중 어디를 보내야 할지 고민(12화 참조)을 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유치원을 권해주셨는데, 특히 먼저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대부분 '영어 유치원'을 보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리고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명분 아래, 저는 보육 기관이었던 레고 교육센터를 선택하였고, 영어 유치원에 대한 고민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7세가 되면서, 이제는 '보육'보다는 '교육'의 관점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다시금 영어 유치원과 공립 유치원을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주변에서도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안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이라도 보내라."라며 제 결정을 재촉하였습니다.
솔직히 이미 사교육 정글에 발을 들여 소수정예 맞춤형 교육의 효과를 경험한 저는, 영어 유치원의 유혹 앞에서 많이 흔들렸습니다. 어차피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점점 더 글로벌화될 것이고, 아이 역시 영어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생후 34개월 무렵부터는 영어 전공자인 막내이모와 함께 영어 놀이를 꾸준히 해오던 상황이라 더 마음이 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영어 유치원의 유혹에서 벗어나 친정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단지 내 공립 유치원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유치원 하원을 친정부모님께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었지만, 단순히 편의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친정부모님께서 사시던 아파트 단지가 꽤 오래된 곳이라 그곳에 자리 잡은 유치원 역시 오랜 시간 운영된 노하우가 있었고, 직접 방문해 상담을 받고, 시설을 둘러본 결과 제 기대에 부응할만한 여건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7세 반 신입 아이가 2~3명 밖에 없다는 점, 어린이집에 비해 한 반에 배정된 아이들 수가 4배나 많다는 점 등이 걸렸지만,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적응력이 생긴 덕분인지, 유치원 고인 물(?)들과도 잘 지내 별 탈 없이 유치원생활을 잘해나갔습니다.
저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유치원에서 하는 학습 외 집에서 따로 교육을 하진 않았습니다.
앞선 회차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제 아이는 이미 34개월에 한글을 뗐고,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한글 쓰기도 마스터한 상태였습니다. 숫자는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 그런지, 덧셈, 뺄셈 같은 기본적인 개념들을 별도로 학습하지 않았지만 일상적인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한 상태였습니다. 영어 역시, 영어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관심을 보여 학습보다는 놀이 형태로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언가를 더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 초등학교 입학을 대비해 새롭게 하게 된 것이 있긴 합니다.
그것은 유치원에서 적어오는 알림장을 꼭 함께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물론, 어린이집에 다닐 당시에도 다음날 등원 준비를 하면서 알림장과 준비물 확인 같은 활동들을 했지만, 그때는 모든 과정을 제가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알림장을 읽으면서 틀린 글자는 없는지 확인했고, 써온 내용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알림장을 쓸 당시의 분위기, 친구들과 있었던 일 등에 대해 이야길 나눴고, 준비물이 있다면 함께 챙기곤 했습니다. 이 활동들은 가능하면 비슷한 시간대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아이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점검하고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특히 신경 쓴 것은 아이가 뭘 했는지,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물어보되, '잘했다'거나 '잘못했다'는 식의 평가와 판단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면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들어주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의 유치원 생활, 1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습니다.
개월수, 만 나이로 따지면 겨우 5년 차 인생이었지만, 다행히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가져 유치원 교육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고, 사회성도 좋아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집에서는 혼자서도 책을 잘 읽게 되면서, 잠자기 전 독서 타임이 함께 책을 읽는 시간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아이가 책을 읽다 졸려하면, 누워서 아이가 읽던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주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유치원생] 아빠와 아들의 독서타임
유치원 하원 후엔, 동네 놀이터, 초등학교 운동장, 체육공원 등을 매일 쏘다녔고, 네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여전히 호기심이 많아 직접 보고, 만지고, 만들어 보고, 타 볼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아이의 흥미와 탐구심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의 첫 졸업식, 유치원 졸업식이 거행되었고, 아이의 영유아기가 끝이 났습니다.
[열두 번째 고슴도치 시선] 낙서에서부터 시작된 미술놀이(12개월)는 크레파스, 물감 등의 재료들을 거쳐,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한 문양 만들기 놀이로까지 발전(26개월)하였습니다. 아이의 미술 활동은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잘했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늘 남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해 내는 창의적인 아이였습니다.
[다음 이야기] 인생 습관이 자라는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