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학계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저는 영유아기를 36개월(만 3세)을 기준으로 영아기와 유아기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돌을 전후로 아이들의 발달 특성이 크게 달라지기도 하고, 올바른 생활 습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시기별로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영유아기는 인생 습관이 자라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때에는 아이의 발달 단계와 기질, 성향에 맞춘 맞춤형 육아와 교육을 통해, 건강한 생활습관을 기르고,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리고 제 아이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만약 여러분께서 지금까지의 제 글들을 읽고 '육아와 교육이 참 평온하다.'라고 느끼셨다면, 그건 교육 부분만 강조한 '악마의 편집'때문입니다. 저 역시 좌충우돌하고 동분서주하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또다시 반복하는 과정들을 겪었습니다.
다만, 일찍이 육아서를 맹신하며 정독한 적이 있다 보니, 영유아기의 중요성을 미리 간파하고 그 시기를 더욱 주의 깊게 보며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영아기
일단, 첫돌 전에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에 집중하면서 아이의 처음들을 마음껏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생후 10개월에 나타난 '내가 할 거야 증후군'을 잘 활용해 식습관, 이 닦기 등, 앞으로 규칙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상적인 일들을 하나둘씩 적응시켜 나갔습니다.
또한, 조건부 친정살이(03화 참조) 중이었지만, 제가 아이의 육아와 교육의 주도권을 잡고 단순하고 확고한 규칙들을 만들어 일관성 있는 육아를 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생후 16개월, '내가 할 거야 증후군'이 점점 심해지고, '고집'이 생기면서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말이 서툰 시기라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시기는 '마음은 알아주되, 행동은 통제하기'를 실천하던 때라, 아이를 혼내더라도 "잘못된 행동 때문이지 너를 싫어해서가 아니야."라는 것을 꼭 인지시킨 후, 반드시 안아서 달래주었습니다.
생후 23개월은 자기주장이 강해진 시기였습니다. 이젠 좋은 것과 싫은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등을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특히 '패션'에 관한 한 타협은 없었습니다. 저는 안전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만 아니면 일단은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생후 26개월, 제 인생 가장 바쁜 시기(학위 논문 심사)였는데, 아이의 자기주장과 고집도 더 강해져 육아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니 감정 절제가 더 안돼 버럭 화를 내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짐하고, 다시 버럭 화를 내는 일들이 늘었습니다. 그러다 제 아이의 성향은 강압적인 방식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공감, 설명, 설득해야 더 조절이 잘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아이의 성향에 맞춰 육아와 교육의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생후 32개월, 육아 난이도가 최상이었습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제 아이는 이때 반항을 다해버려서 중2 때 그리도 평온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좋고 싫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해서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몇 번의 위기와 고비가 있었지만, 이유불문 해야 할 일이 있고, 잘못을 잘못으로 인지할 때까지 설명하고 설득하며 버텼습니다.
생후 34개월, 다 끝난 줄 알았던 반항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는 정말 육아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거나, 혹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을 적용해 엄마에게는 더 이상 반항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인시켰습니다. 결국 아이는 떼를 쓰기보다는 말로 표현하고, 한숨을 쉬긴 했지만 꾸역꾸역 이를 닦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당시 도움을 준 3세 아이 육아책, 방귀대장 뿡뿡이, 오즈의 마법사 동화책, 그리고 12월 한정이긴 하나 산타 할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 번째, 유아기
세 돌까지의 기간 동안, 아이의 성향과 기질 파악이 끝나고, 웬만한 훈육이 이루어져서인지, 독박육아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직은 아이가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지라 일상 속 잘못된 행동은 통제하고 긍정적인 행동으로 전환해 줄 필요가 있었는데, 이에 저는 '칭찬 스티커'를 활용했습니다. 제 아이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그런지 이 칭찬 스티커의 효과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유효했습니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배우는 인성, 다양성 교육 등이 집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져, 아이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공중도덕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직업과 장애, 다문화 가정 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지 않도록 교육시켰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틀린 건 틀리다고, 다른 건 다르다고 가르치면서도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유아기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보다는 아이의 신체, 인지, 정서 발달을 위해 생활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즉,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것도 좋지만 바르게 자라도록 돕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열세 번째 고슴도치 시선] 생후 9개월부터 걷기 시작한 아이는 생후 10개월엔 외할머니 주방에 침입(?)해 잽싸게 소쿠리 또는 바가지 들고 도망치기 등이 가능해졌습니다. 첫돌이 되기 전(생후 349일째)에는 공을 발로 차는 놀이(축구)가 가능해졌고, 생후 21개월에는 두 발 모아 뛰기가 가능했습니다. 개월수에 비해 빠른 신체발달은 단순한 운동 능력을 넘어 인지, 감각통합, 두뇌의 실행 기능이 발달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제 아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생후 10개월] 바가지 들고 도망치기
[다음 이야기] 에필로그 : 네가 카이스트에 갈 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