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제 주변에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분명한 목표를 세워놓고 그 길을 따라가도록 강요했던 지인들이 몇 있습니다.
그 경우, 대개 아이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잘 따라가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성공 혹은 실패하는 걸 봤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딱히 목표를 세워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이런 교육을 시켜야겠다.' 또는 '나는 아이를 사교육 없이 키워야겠다.' 같은 마음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영유아기에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아줄까 생각했고, 제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잘하는지 관심 있게 관찰했습니다.
이 시기, 제가 관찰하고 파악한 아이의 기질 및 성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 기질과 성향은 아이의 초, 중, 고등학교 시절 자기주도학습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째,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신생아기 포함 아이가 걸어 다니기 전까지, 아이의 감정에 즉각 반응하기(02화 참조) 위해서 자주 안아주었던 저는, 단순히 안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를 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아이에게 새롭고 낯선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도 커 가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만져보는 순간들(04화 세 번째 고슴도치 시선 참조)을 종종 보였는데, 저는 그럴 때 자신만의 탐색을 마치고 다음 행동으로 나아갈 때까지 가만히 두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뭔가를 만지고 살펴보는 활동들이 많았던 영유아 시기, 하지 말라는 소리보다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라면 안전에 문제가 없는 한,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가만히 두었습니다.
이런 아이의 호기심은 관찰력의 토대가 되었고, 이는 이후 과학적 탐구와 수학 문제 해결 능력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무엇이든 끊임없이 반복하고 연습하는 아이였습니다.
모든 아이의 발달 과정에는 반복하며 연습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뒤집기가 그렇고, 서서 걷기가 그렇습니다. 저는 그 시기를 아이가 제대로 겪고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무한반복놀이(05화 참조)가 시작되었던 생후 7개월에도 아이가 신뢰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놀이의 다양한 변주로 그 시기를 잘 견뎌냈습니다. 무한반복놀이가 책을 가지고 노는 행위(06화 참조)로까지 확장되었을 때도 아이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고, 단 1초라도 책을 읽어주며 아이가 책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이든 끊임없이 반복하고 연습하는 아이의 이런 성향은 스무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그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났던 시기는 아마도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의 학습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셋째, 흥이 많으면서, 생각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제 아이도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늘 춤을 추고 뛰어다니며 놀다가도 멍을 때리거나 구석진 곳에 숨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결국 유아텐트를 이용해 아이만의 공간을 만들어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영역을 존중해 주었습니다(11화 열 번째 고슴도치 시선 참조).
제 생각에, 아이의 흥이 많은 성향은 흥미 있는 과목에 깊이 몰입하는 형태로, 생각하는 특성은 단순 암기나 연산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학습 방식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의적인 아이였습니다.
낙서에서 시작된 미술활동(13화 열두 번째 고슴도치 시선 참조)을 통해 아이의 생각이 조금 독특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아이가 기성품 블록(레고)을 가지고 놀 때 보니, 처음에는 매뉴얼대로 작품을 만들고, 그에 맞춘 놀이를 했지만, 며칠 지나고 보면 작품들을 모두 해체하고 그 부품들로 자기만의 다른 작품들을 만들어 노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이의 이런 특성은 기존 틀에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더 큰 흥미를 보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는 이후 과학 실험이나 수학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현된 것 같습니다.
자, 지금까지 보신,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나온 아이의 영유아기, 어떠셨습니까?
특별함을 찾으셨습니까? 아님, 별거 없다 싶으십니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제 아이의 영유아기와 제 육아 방식이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래보다 신체발달이 빨라 서서 보는 세상을 조금 일찍 경험했고, 소근육 발달도 빨라 스티커 붙이기, 카드 뒤집기, 한글 쓰기 놀이 등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지만, 영유아기의 발달이 다소 느리다고 해서 아이의 삶 전체가 느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늘 아이 행동 뒤에 서서 아이를 관찰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시기를 잘 조절하며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보여 육아와 교육 스킬이 남다르다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저 저질체력에 뭘 몰라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과학고와 카이스트'라는 결과론적인 전제를 걷어내고 보면, 제 아이의 특성들은 그저 고슴도치 엄마 눈에만 보였던 '특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아이들에게서도 분명 이런 '특별함'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아이의 빛나는 말 한마디, 반짝이는 생각에 감탄하신 적 없으신가요?
혹은, 아이의 따뜻한 심성과 다정한 배려에 마음이 뭉클해졌던 순간은요?
만약 이도 저도 없다면, 아이의 엉뚱함을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 있었을 아이의 호기심 주머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신 건 아닐까요?
정답은 없지만, 희망회로를 돌려봅시다.
이 시기 아이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고, 어떤 아이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의 아이들은 카이스트에 갈 상인가요?
에필로그를 썼지만, 영유아편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2' 초등편을 발행하기 전, 몇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먼저 들려드릴까 합니다.
[다음 이야기] 못다 한 이야기 1. 필사 비하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