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이 글은 07화 '국어 능력의 원천을 찾아서' 에피소드에 관한 비하인드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몇몇 분께서,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나도 했던 거다. 그런데, 필사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이다."라는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유아기 아이의 '필사' 비하인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 태도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인데, 아마 여러분도 아이가 부모를 따라 하는 모방 행동을 한 번쯤 경험해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아이도 생후 12개월 무렵부터 모방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았던 시절에는 함께 살고 있던 가족들의 행동들을 따라 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뒷짐 지고 걷는 모습, 외할머니께서 가계부를 쓰면서 계산기를 두드리시는 모습, 아빠가 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 등을 유심히 봤다가 따라 했습니다.
의사소통이 된 후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방 행동과 더불어 어른들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생후 23개월, 하루는 아이가 인형놀이를 혼자 하면서 "오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OO아, 오빠가 누구야?"
"오빠? 내 아빠."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제가 신혼 초 버릇 그대로 아이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듣고 따라 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아이 앞에서는 더욱 말을 가려하며 조심했습니다.
아이의 모방 행동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아빠가 다이어리를 쓰고 있으면 옆에 가서 글을 쓰는 척 흉내 내었고, 막내이모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같이 엎드려 열심히 뭔가를 쓰는 척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국어 능력의 원천을 찾아서(07화)' 에피소드에서 말씀드린 제 아이의 필사는 모방 행동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모방 행동이었지만, 저는 제대로 흉내 낼 수 있게 필기류를 아이에게 제공했습니다. 한글을 따라 써보고 싶어 할 때도 그냥 지나지치 않고 재미있게 써볼 수, 아니 그려볼 수 있게 칠판을 사주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동화책 필사를 하고 싶어 했을 때는 유아용 책상, 공책, 연필을 제공해 마음껏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다만, 이 모든 행동의 기본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였습니다. 제 아이에게 글쓰기(필사)는 학습이 아닌 놀이였기 때문에, 언제든 하고 싶을 때 하고, 그만두고 싶을 땐 멈출 수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대신, 저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면 적극적으로 환경을 마련해 주는 편이었습니다. 늘 아이를 관찰하고 지켜보고 있어서, 남들보다 빠르게 아이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아이들은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나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나요?
엄마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서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세요.
그게 꼭 학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아직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영유아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