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제가 아이를 키울 때, 그러니까 15~20년 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미디어 환경'이 아닐까 합니다.
그때도 휴대폰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이 아니었고,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기껏해야 TV 정도가 그 당시 가장 강력한 미디어 환경이었는데, 저는 그 TV 조차도 혹시 아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보여주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거실에 나와 놀 때에는 TV를 거의 틀지 않았고, 틀더라도 뉴스나 EBS 방송 정도만 잠깐씩 켜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13개월에 접어들면서 아이의 관심사가 '누르기', '쌓기', '꽂기' 같은 동작에 집중되자 TV를 켜고 리모컨을 작동시키는 것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어른들처럼 TV를 켜고 소파에 기대앉는 모방행동까지 하곤 했습니다.
다만,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TV 프로그램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TV 화면에 가끔씩 눈길이 가는 것이 신경 쓰여, 이왕이면 아이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없나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EBS TV 프로그램 '방귀대장 뿡뿡이'였고, 제 아이는 생후 17개월부터 '방귀대장 뿡뿡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생후 17개월] 아이의 첫 TV 시청
제 아이에게 '방귀대장 뿡뿡이'는 단순한 TV 프로그램 그 이상이었습니다.
노래와 춤을 따라 하고, 대사를 흉내 내며, 일상을 배워 나가는 데 있어 좋은 선생님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무엇보다 뿡뿡이처럼 엄지를 치켜세우며 "멋지다", "최고다"라고 외치는 걸 가장 좋아했는데, 이런 칭찬의 말들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태도와 바른 습관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귀대장 뿡뿡이' 비디오테이프, 특히 생활습관과 관련된 편들을 구비 해두고, 아이가 보고 싶어 할 때마다 반복해서 보여주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의 뿡뿡이에 대한 사랑은 생후 23개월 무렵, '짜잔형'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고, 이후 '한글이 야호', '뽀롱뽀롱 뽀로로', '토마스와 친구들', '모여라 딩동댕(번개맨)' 같은 프로그램들로 관심이 옮겨갔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TV 외에도 제가 아이에게 노출시킨 미디어 환경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를 활용한 학습 동화와 노래 교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컴퓨터를 자주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아이는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며 놀곤 했습니다. 그래서 생후 20개월 무렵부터 아이가 원할 때 유아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 접하는 콘텐츠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주로 옛날이야기를 단순한 2D 그림으로 구현한 동화와 동요여서, 시각적인 자극보다는 내용과 언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생후 23개월쯤에는 마우스 사용법도 간단히 가르쳐, 아이 스스로 원하는 동화나 노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 비록 규칙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관심이 컴퓨터로 향할 때면 이를 활용해 미디어 기반 놀이 교육을 함께 해 나갔습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육아/교육에도 저 나름의 두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가능하면 아이 혼자 미디어 환경에 노출시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가 TV나 컴퓨터 동화를 볼 때, 아이만큼 집중해서 보진 못하더라도 아이 곁에 있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웃고, 재미있어하는 부분에 공감해 주었으며, 프로그램 내용 등을 파악해 이후 일상에서 아이와의 대화나 놀이에 자연스럽게 접목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가끔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 혼자 TV나 컴퓨터를 보게 한 뒤, 나중에 어떤 내용을 봤는지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 콘텐츠를 놀이와 생활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능할 때마다 다음 활동들로 이어나갔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동요를 들은 날에는 하루 종일 그 동요를 흥얼거리며 놀았습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방귀대장 뿡뿡이'에서 팝콘을 먹는 장면이 나온 날에는 아이 손을 잡고 집 근처 마트에 가서 팝콘용 옥수수를 사 와, 함께 만들어 먹는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손을 씻어요."와 같은 바른생활 습관과 관련된 장면을 본 날엔, "우리도 방귀대장 뿡뿡이처럼 해보자."며 아이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저는 TV나 컴퓨터를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와의 대화 주제를 넓히고 놀이 영역을 확장하는데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미디어 육아 혹은 미디어 교육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자연스럽게 줄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아무래도 제 아이가 어릴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미디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보여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도, 이제는 부모의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떻게든 교육적으로 활용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