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송강 정철의 시조에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아버지를 자식을 낳게 한 존재로, 어머니를 기르는 존재로 묘사하며, 당시 시대상과 전통적 사고방식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 이 시조를 접했을 때, 제가 알고 있던 생물학적 지식과 달라 잠시 의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만약 국어 선생님께서 "이 부분은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상징하는 문학적 표현이다."라고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면 두고두고 잘못된 문장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빠 육아에 대해 쓰려다 보니, 문득 아이 아빠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아버지 날 기르시니..."
"내가 업어 키웠지."
지금껏 영유아편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던 아빠 치고는 꽤 파격적인 자신감 아닌가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유아 시기의 '아빠 육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아빠 육아는 돌이 지난 이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아이 아빠가 많이 바쁘기도 했고, 말도 통하지 않았으며, 아이가 먹고, 싸고, 놀고, 자는 생존과 발육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던 시기라 아빠가 특별히 해줄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딱 한 가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에게 해주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와의 스킨십입니다. 출근할 때나 아이가 원할 때 언제든 안아주었고, 아이가 자고 있는 날에도 머리를 쓰다듬고 앙증맞은 손과 발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런 꾸준한 애정 표현 덕분인지, 제 아이의 첫 말은 "아빠빠빠"였습니다.
돌이 지난 이후부터는 아이에게도 아빠의 존재감이 점점 커졌습니다.
여전히 가족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틈틈이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사진과 영상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빠가 '몸으로 놀아주는 역할'을 담당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 아빠 역시 저처럼 저질체력에 조용한 성격이라, 활발한 놀이는 함께 살던 제 동생들 몫이었고, 아빠는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망토를 두르고 아빠 손을 잡으면, 아빠도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아이와 함께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녔습니다. 말없이 이어지는 그들만의 놀이는 제 눈엔 꽤 기괴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파리채나 효자손 하나만 있어도 둘만의 놀이가 재미있는지 그걸 들고 흔들며 노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습니다.
생후 19개월 무렵부터는 좀 더 적극적인 상호작용 놀이가 가능해졌습니다.
아빠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아이의 흥에 맞춰 함께 춤을 추거나, 가끔은 밴드를 결성해 둘만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아빠와 함께할 때마다 아이는 "까르르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리곤 했습니다.
아이의 모방 행동이 정교해지면서부터는 아빠가 하는 건 뭐든 따라 하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빠가 다이어리를 쓰면 옆에 앉아 글을 쓰는 척했고(16화 참조), 아빠가 스트레칭을 하면 옆에 같이 누워 흉내를 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영아기에 아빠가 아이에게 해 준 것은 그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해 주고 아이의 모방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준 것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는 믿음과 사랑으로 전해졌던 것 같습니다.
세돌이 지나면서부터는 일상 속에서도 아빠와 함께 하는 것들이 늘어났습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목욕탕 가기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제가 데리고 다녔지만, 세돌 이후부터는 아빠가 아이를 도맡아 데리고 다녔습니다.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는 일도 아빠의 몫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른용 자전거에 아이용 안장을 달아 태우고 다녔는데, 곧이어 네발자전거를 가르치더니, 마침내 두발자전거까지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조바퀴의 위치를 살짝씩 조정해 가며 아이가 스스로 균형을 잡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왔고, 결국 아이는 두발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집 근처 공터에 나가 함께 축구를 했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해 아이의 기를 살려주었으며, 각종 체험 활동에도 함께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유아기에는 아빠의 역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남자아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이 시기부터는 아빠가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학습적인 부분에서는 아직까지 아빠의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생후 19개월] 아빠 손을 잡고 처음 바다에 들어간 날
요즘 젊은 아빠들은 제가 아이를 키우던 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육아를 부부 공동의 책임이라 여겨,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분들도 많아졌고, 아이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아빠들도 자주 보입니다.
아빠 육아의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 결과들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는 '아빠가 아이와 교류를 많이 할수록 인지, 정서, 행동 발달은 물론 대인 관계까지, 아이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 영향이 커진다'는 것입니다(출처 : 아빠 육아의 장점... 이런 게 있네, 메디팜헬스뉴스, 2023. 3. 29일 자). 또한 아빠의 육아 참여는 엄마 혼자 감당하던 육아의 무게를 나눠 가지는 효과도 있어 가족 모두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빠 육아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아직 남아 있고,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빠 육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자라면서 아빠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육아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해 나가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부모가 함께할 때, 아이도 더욱 건강하게 자라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