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프롤로그
언젠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이야기. 마흔다섯을 살아오면서 자랑할 것도 별로 없지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먹고 글을 시작하려 한다. 목적 없이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삶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지금도 가끔 그 꿈같은 어린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라 더 아련한가. 내가 태어난 곳, 나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그곳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가끔 고향을 지나칠 때면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애절하지는 않다. 마음 깊이 추억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기에 애절하지는 않다.
과학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적 공부가 더없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선택해서 지금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삶이 그렇다. 언제나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다. 지나고 나니 삶의 여정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다. 초등학교를 다닌 시절이 가장 추억이 많다. 학교까지 10리 (4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매일 걸었다. 가끔 늦으면 선생님들이 출근하실 때 타는 버스를 이용하곤 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버스를 타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다. 아주 시골은 아니었지만 나는 걷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학교까지 제법 거리가 있어 학교 가는 꽤 먼 여정 동안 나름 추억이 많았다. 여름과 겨울, 친구들과 다녔던 그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끔 꿈에서라도 볼 때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좋은 추억이 더 많은 시절이었다. 산과 들을 자유롭게 다니며 자연을 관찰하고 밤하늘 별을 쳐다보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꼈다.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싶은 마음은 아마도 어렴풋이나마 그 시절 시작된 것 같다. 자연은 나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풀과 나무, 곤충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꿈을 키웠다. 과학자가 되리라는 구체적인 꿈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도시에서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었다. 제법 꽤 세련된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의 귀염을 독차지하고 공부도 잘했다. 반장과 부반장을 나란히 하면서 그 아이와 꽤 가까워졌다. 하루는 여름 성경학교에 오라고 초대를 했다. 집에서 그 아이 집까지 정말 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에 대한 신의를 귀하게 여겨 그 아이와 약속을 했다. 가겠노라고. 교회 여름 성경학교를 다니며 그 아이의 부모님으로부터 나름 좋은 대접을 받았다. 멀리서 왔다고 식사도 준비해 주시고 예배 사이에 책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목사님 서재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책이 '과학동아'였다. 지금도 좋은 책이지만 그 시절 '과학동아'는 정말 좋았다. 새로운 흥미로운 과학 소식이 가득했다. 넓은 세상을 향해 창을 열듯 그 책의 내용을 탐독했다. 교회를 가는데 열심을 냈다. 그 아이와 특별한 로맨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 교회는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신선한 곳이었다. 교회에 계신 분들도 모두 친절하시고 즐거웠다. 어디를 가도 나는 좋은 추억이 가득했다.
나는 특별히 공부에 대해 전략이 있거나 미래를 위해 독하게 준비한 적이 없었다. 그저 주어진 학습에 충실했다. 중학교를 올라가며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입학했는데 첫 달 시험에서 반에서 3등을 했다. 선생님은 좋아하셨다. 기대하지 않은 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니 학교는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도 좋은 추억이 많다. 그때 친구들 중에는 지금 교수인 동기들도 제법 있다.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낙이었던 시절이라 정말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 시절 나는 참 반듯했다. 좋게 말해서 그렇다. 뭐 어쨌든 중학교 졸업할 때 강원도 전체에서 3등을 했다. 내가 선택한 고등학교를 1등으로 들어갔으니 대단한 발전이었다.
공부가 내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나일뿐인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공부 외에 다른 일들은 무의미한 것 같이 여겨졌다. 공부에 특별한 전략이 없던 나로서는 고등학교 공부가 힘겨웠다. 특별한 사명이 없이 앞을 향해 돌진하는 공부였기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시행착오가 많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가장 많은 추억이 깃든 시절이지만 그때를 돌이킬 때마다 아련한 아쉬움이 있다.
대학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공부가 무엇인지 처음 느낀 것 같았다. 공부가 재미있었다. 다른 동기들은 대학에 와서 자유를 만끽했는데 나는 오히려 공부가 좋았다. 첫 학기의 시행착오 외에는 모든 학기에서 고르게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한편으로는 성적 우수 장학금을 노렸다. 지금은 많은 학생이 장학금을 받지만 그때 나는 장학금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전체 학과 학생 중에서 3% 정도만이 전액 장학금을 받았기에 최상위 성적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 조건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어쨌든 나는 대학에서 미래를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대학원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대학원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왜 대학원에 가야 하는가. 어떤 삶을 꿈꾸는가. 전혀 대답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잠시 방황하던 나에게 천사 같은 아내가 나타났다. 달콤한 연애가 있었기에 그 시절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다. 선배들과 지도교수님을 생각하면 참 죄송스러운 시절이었다.
결혼과 함께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회사를 들어갔다. 나로서는 정말 필요했던 병역특례. 기회 자체가 별로 없던 그 당시 회사는 정말 고마운 곳이었다. 회사에서 연구개발자로서 정말 성실하게 살았다.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그랬다. 복잡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회사만큼 좋은 곳은 없다.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며 지혜를 배우는 곳이다.
나름 보람 있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만족감은 덜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꿈꿀 수 있는 미래가 필요했다. 나에게 박사과정으로의 도전은 꿈을 행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서른둘의 선택, 아이가 둘인 가장이 쉽게 선택할 수 있던 길은 아니었다. 아내와 두 아이를 이끌고 다시 대학원으로 들어갔다. 늦은 나이 박사과정은 처절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은 무척 고되고 힘들었다. 다시 하라면 할 거다. 공부가 좋았고 필요했으니까. 나는 박사가 되고 싶었다.
박사를 3년 만에 마쳤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지도교수님을 거의 매일 찾아가며 발전을 인정받기 위해 애 섰고 지도교수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배려해 주셨다. 좋은 분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진리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두 전공을 합쳐 새로운 길을 갔다. 박사과정 동안 도전했던 연구 주제는 지금까지 나의 전공의 균형을 지탱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결국엔 보상이 있다.
지도교수님의 전문 분야는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하여 다른 한 분야에서 가장 저명하신 교수님이 계신 곳으로 포닥을 갔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가게 되었다. 외국의 낯선 곳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마음고생이 많았다. 연구도 어려웠고 생활도 어려웠다. 함께 극복한 가족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그렇게 교수가 되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자랑스러운 스토리는 없다. 그저 나를 이끄신 분을 따라 천천히 그 길을 따라왔을 뿐이다. 교수가 되고 싶고 교수가 되리라는 기대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다.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너무 일찍 그 꿈을 가지면 너무 오랜 여정 동안 지칠 것 같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적절한 보상이 따르는 것 아닐까.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을 좋아한다. 꾀부리고 잔 재주가 많은 사람은 아니기에. 묵직하게 일하면서 내 일을 할 뿐이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그래도 몇 가지 자랑스러운 일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교수가 되길 잘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지금 아내를 만난 것, 두 아이 아빠가 된 것, 그리고 교수가 된 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은 이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겠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진심은 전해진다. 이 글은 내가 어떻게 교수가 되었고 지금 어떻게 교수로서 살고 있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아직 영글지 않은 젊은 교수가 어떤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진심이 전해지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글이 단순한 성공담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란다. 사실 절반은 실패로 가득하다.
(2018년 7월 31일 늦은 11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