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만나기 D-day, 단숨에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레고 두려운 시간
처음이기에 더 그런 것이지만
진통 주기를 체크하는 어플만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이 만 하루가 넘어가고, 그렇게 계속 그 설렘과 두려움은 커진다. 산통을 겪는 아내를 보면서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손을 잡아주고 같이 심호흡을 해줄 뿐이다.
배 속의 아기는 엄마 아빠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지 느긋하고 시간 예절이 없다.
밥숟가락만 들면 진통 강도가 강해지고 주기가 짧아지는 건 무슨 시간 예절인가? 신기하게 밥상을 치우고 이만 닦으면 다시 간격이 길어진다. 나오면 두고두고 잔소리해야겠다는 푸념도 해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나면 얼른 무사히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밖에 남지 않는다. 결국 예의 없는 우리 아이는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 밤이 되어서 슬슬 나올 기미가 보였다.
진통 간격이 짧아지고 병원에 갔다. 그러나 아직 3cm 정도 열린 상황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가족분만실에 들어왔다.(이틀 전에는 2cm라서 집으로 돌아갔었다.) 언제까지 기다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내는 무통 주사를 맞고 기다렸다. 분만실이라는 공간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아늑하고 생각보다 불편하다. 우리밖에 없는 공간이라 편안한데, 미묘한 긴장감이 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소리다. 간호사들의 다급한 소리, 옆 방에서 아이 낳는 소리. 분만실은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현장이다.
통증이 심해져 가는 아내는 옆방에서 나온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마냥 부럽다. 기다림 속에서 새벽이 되어 가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인가 보다. 아내의 주기적으로 고통을 참는 것을 보면서 남편인 내 마음은 애가 탄다. 내가 아프지 않은 게 미안하다.
밤 아홉 시에 분만실에 들어왔는데 산통이 본격화된 것은 새벽 한 시 즈음이다. 이때부터 뭔가 본격적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간 병원은 이 결정적인 타이밍에는 아빠를 분만실 밖으로 내보내고 커튼을 친다. 분만실 밖 복도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간호사의 힘주세요 라는 말과 아내가 고통과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분만실 밖에서 진득이 기다릴 수 없어서 서성이고 서성일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내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눈매랑 코까지도 나랑 똑같이 닮은 딸이 나왔다. 아빠가 되어서 아이를 안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걱정과 어색함이다. 아기는 톡 하면 부러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내 아이이지만 처음 보는 어색함이 생각보다 견고하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이런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굉장한 어려움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만개의 다른 임신 과정이 있고 만개의 다른 출산이 있으며 만 명의 다른 아이가 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또 다르다. 그리고 또 나같이 만 명의 다른 아빠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진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