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모든 감정 또한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은 두려움의 거울]
마을에는 '검은 아가리'라 불리는 심연의 동굴이 있었습니다. 해가 지기도 전에 모든 빛을 밀어내고 바닥조차 보이지 않으며, 싸늘한 어둠은 시야를 가두어 침입자를 삼켜버린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소년 역시 그 동굴 근처에만 가면 가슴속에 돌멩이를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느 날, 소년은 동굴 근처에서 할머니가 물려주신 소중한 '윤슬의 거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슬플 때마다 마음의 안부를 묻던 유일한 친구였기에, 소년은 기댈 곳을 잃은 채 동굴 앞을 서성이며 타들어 가는 입술을 바짝 깨물었습니다. 이제 누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까, 영영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잊어야 해. 무서운 곳이야. 얼른 돌아가자."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떨리는 두 발은 동굴의 문턱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익숙하고 따뜻한 마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영영 자기를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본능과 거울을 되찾고 싶은 간절함 사이에서 소년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잊고 있었던 익숙한 온기가 뺨을 스쳤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란다.
두려움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란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할머니는 소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그림자야. 그 감옥의 열쇠는 언제나 너의 손안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의 형체는 이내 눈부신 빛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꿈이었을까요, 아니면 마음이 들려준 대답이었을까요? 소년의 주먹에는 이전에 없던 단단한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떨리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가두던 가장 짙은 그림자의 심장을 향해 무거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동굴 안은 무거운 정적과 질식할 듯한 공기로 소년을 짓눌렀습니다. 그때, 벽 위로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가 솟구쳤습니다. 날카로운 뿔을 세운 그림자는 소년을 집어삼킬 듯 기괴하게 일렁이며 울부짖었습니다.
소년은 눈을 감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거대한 그림자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아주 작게 섞인, 누군가의 흐느낌 소리가 느껴졌습니다. 소년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심장의 울림을 삼키며, 한 발 한 발 내디뎠습니다. 집어삼킬 듯 일렁이던 괴물의 형상이 마치 물에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며 드러난 그곳에는 소년이 상상하던 괴물은 없었습니다. 앙상하게 마른 어깨를 잔뜩 웅크린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몸보다 수십 배나 큰 괴물 모양 종이를 방패처럼 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 내가 무섭지도 않아?"
아이는 힘겹게 소리쳤지만, 거울을 쥔 손가락 끝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으며, 어둠에 길들여진 아이의 숨결에는 서늘한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발견할까 봐 겁이 나면서도, 누군가 이 지독한 침묵을 깨주길 기다려온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너였구나. 자신을 지키려고 그렇게 커다란 그림자 방패를 만들고 있었던 게."
순간, 아이를 꽁꽁 묶고 있던 얼음 같은 긴장이 한순간에 툭, 하고 끊어져 나갔습니다. 아이의 손에 무겁게 들고 있던 종이 괴물은 스르르 떨어지더니, 아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고여있던 두려움이 뜨거운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소년은 아이를, 아니 자기 안의 가장 여린 조각을 가만히 품에 안으며,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동굴을 메우던 서늘한 냉기는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괴물은 그저 빛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었습니다. 두려움은 나를 해치려는 적이 아니라, 상처받기 싫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의 가여운 조각이었습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그 떨림조차 나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안아주는 마음이라는 것을요.
내면의 두려움은 나를 해치려는 적이 아닙니다. 사실은 상처받기 싫어 웅크린 채, 나를 지키려 애써온 가여운 조각일 뿐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가장 먼저 안아주었어야 할 '어린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그 떨림조차 나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안아주는 마음입니다. 불완전한 모든 감정 또한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 인정하는 순간부터가 내면을 바라보는 시작입니다.
오늘 밤, 당신의 동굴 속에서 떨고 있는 그 아이에게 먼저 손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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