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과자 도감

冬花 : 동화

by 보네

#. 겨울딸기, 고흥유자, 피스타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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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지고 난 옅은 금빛은

찰나의 먹빛으로 스며들고

차가운 공기와 서늘한 바람,

주위를 맴도는 겨울의 향


어둡고 추운 순간을 나란히 두고

단단한 땅 위로 피어난 온기

어두워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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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冬花


하루하루 흐를수록

짙어지는 하늘과 서늘한 땅.

얼음을 품은 듯 매서운 공기는

손 끝을 얼게 만들고


한 번씩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숨어보려

이리저리 고개를 파묻어 보아도

코 끝과 볼이 붉게 물드는 계절

겨울이 왔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찬기운이 몰려오자

하늘에선 커다란 눈송이가 쏟아져 내렸다.


코 끝까지 감쌌던 목도리를 내리고

고개를 들어 흐린 하늘을 본다

눈을 작게 뜨고 깊이 들여다보아도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 수 없는

조각들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솜털 같은 제각각의 알맹이들은

얼굴에 닿자마자 작은 물방울만 남기고

사라진다.

한참을 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내 안의 깊은 곳까지 겨울이 머문다.


매섭고 날카롭고 차갑고 단단하지만

그러면서도 보드랍고 가볍고 청명하다.













이번과자의 이름, 동화는 가을이 왔을 때부터

정해놓았다. 그때의 과자는 동화 같은 아기자기함을 떠올리며 스케치를 했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초의 기대감

반짝반짝한 순간이 담긴


12월, 혼란한 시간을 보내면서

반짝반짝 동글한 꿈같은 동화를 지나

얼어붙은 순간에도 피어나는 겨울 꽃,

동화의 시간까지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밝은 곳에서는 미쳐 보지 못했던

곁에 머물러 있어 깊이 알지 못했던

춥고 외로운 시간을 품고 피어나는

어두워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꽃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

흘러간 사람들의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는 요즘.


얼어붙은 땅 위로 피어난 지난 시간의 온기와

다시 흘러가는 우리들의 순간


그 시간의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작업했던 이번 과자.





유자와 딸기는 과자를 시작했을 때부터

좋아하는 조합이다.

상큼하지만 레몬, 라임의 푸릇하고

새침한 느낌과는 다른

유자만의 깊은 향은 무언가

짙은 겨울의 밤이 떠오른다.


어두운 밤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마른 가지 사이 찬바람이 쏴아 밀려오면

앓는 소리가 나오다가도

특유의 서늘한 감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유자에는 깊은 겨울의 향이 담겨있다.


이 시간을 담아

좋아하는 유자와 딸기를 중심으로

부재료를 하나씩 더해 테스트를 하다

지금의 동화를 만들었다.


처음엔 얼그레이를 메인으로 넣고 싶었는데

몇 번 테스트를 해보아도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아

멀리 보내주고 다른 재료를 찾다

피스타치오 가나슈를 만들어 더했다.


타르트지 외에도 씹히는 식감이 있으면 해서

바닐라크럼블과 초콜릿을 넣어 크런치를 만들고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바닐라무스를 만들어

마무리했다.


좋아하는 우리밀타르트지에

상큼한 유자가나슈

바삭한 바닐라크럼블 크런치

유자청 딸기 인서트

고소한 피스타치오크림

부드러운 바닐라크림까지


조합을 잘 모아 꽃 같이 만들고 싶어

지금의 형태를 잡기까지 몇 번을 다시 만들었던 과자

-고민의 흔적들


멀리 보냈던 얼그레이는

작은과자로 다시 만들기로하고

미니에끌레어의 크림으로 사용했다.

다크초콜릿에 얼그레이를 인퓨징해서

진한 얼그레이 초코크림을 만들고

슈 위에는 화이트 초콜릿 글라사쥬로 마무리했다.


폭신한 슈안에 부드러운 크림을 생각하며

매번 만들때 마다 크림의 농도가 단단해지지 않게

하는것에 신경을 썼다.

입안에 닿을때 촉촉하고 진한 초코얼그레이 향이

느껴졌으면 했던 작은과자.


이번겨울, 딸기과자는 아마도

동화가 마지막일 듯해서

한 품종만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여러 품종을 써봤다.


설향 금실 장희 이렇게 3종류를 사용해 봤는데

역시 장희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장희는 과육이 부드러운 편이라

과자에는 사용해 본 적이 없다가 이번에 써보았는데

부드러운 대신 향이 정말 좋다.


평범한 딸기 향이 아니고 복숭아나 살구 같은

복슬한 과일의 향.

딸기의 향 때문에 과자의 맛이 더 깊어지는 느낌

이런 과일을 만날 때마다 언젠가 가격 상관없이

엄청 맛있는,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넣은 과자를

작업하고 싶다.




좋아하는 유자와 딸기로

겨울의 시작을 담은 과자,

동화가 좋은 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02.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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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花: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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