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사람을 만날 때 그에게서 집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비염 때문에 콧바람조차 코에 넣지 못하는 나는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비단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저 '고유의 집 냄새'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집수리 봉사를 다니기 전까지는.
낯선 집을 살피다 보면 감히 수혜자분의 이야기를 엿보게 된다. 담배를 끊으셨다는 말씀과 달리 노란 벽지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거나, 아버님 혼자 사시는 집에 늘어선 어머님의 사진들을 보며 주책맞게 눈가가 뜨거워진다거나. 집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있고, 그만큼 다양한 향기가 서려 있다.
그중 단연 최고의 향기는 무취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집은 없지만, 적어도 비염인의 코를 뚫지는 못하는 정도. 나는 그런 집을 무취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어떤 냄새가 그렇게 봉사를 힘들게 하는가? 최근에 집을 가득했던 냄새는 간장 향이었다. 처음에 집에 도착했을 때는 냄새를 제외하고도 어려움이 많았던 집이었다. 간장의 존재를 의식할 정도로 약한 향기만 풍길 정도였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법. 콘센트 따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찰나, 멀리서 스멀스멀 향기가 풍겨왔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큰 외침이 들렸다.
“미쳤다. 간장 종지 깼음..!”
닦고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간장의 향기.. 깊고도 진한 향이 지독하게 코를 찔러댔다. 하지만 이 정도 냄새는 약과다. ‘그 집’에 비하면.
8박 9일 동안 펼쳐지는 봉사 강행군, 집수리 로드에 가서 만나버린 ‘그 집’, the house.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 집에는 고양이도 있고.. 염소도 있고.. 쓰레기도 (좀 많이) 있고.. 냄새도 난다고 했다. 내게는 이미 두 차례 냄새로 고통받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냄새만은 안된다며 빌고 빌었다. 평소에 비염으로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천만 비염인들의 코를 단번에 뚫어준.. 그런 집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화장실은 있지만, 변기가 없고. 화장실과 거실이 분리되지 않아, 화장실 향기가 집 전체에 퍼지는 집이었다. 아버님이 담배를 피우신다고 들어서 걱정했는데, 차라리 담배 냄새가 향기로웠다면 짐작하겠는가? 아직도 그때 봉사의 기억을 떠올리면 냄새가 코끝에 서려 있는 것만 같다. 두 번째 집은 처음으로 봉사에서 냄새 때문에 충격을 받았던 집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봉사는 처음이었는데.. 마스크를 쓰면 숨을 못 쉬어서 답답하고, 마스크를 벗으면 코를 찌르는 냄새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마스크 쓴 봉사가 더 익숙해질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집’에 비하면 위의 두 집은 귀여운 정도였다. 저장강박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는 수혜자 댁에는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집은 냄새로 가득했다. 제발 집 주소가 잘못된 거라고,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누가 말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부엌, 방 2개, 입구.. 모든 곳에서 다른 냄새가 났다. 그중 좋은 향기가 나는 방은 하나도 없었다. 절망했다. 부엌 안에는 온갖 음식물들이 썩어있었고, 바닥에는 차마 부화하지 못한 '바선생'의 제자가... 마구마구... 흩뿌려져 있었다.
처음에 들어섰을 때 집이 주는 인상은 '살기 좋은 집'이었다. 아, 물론 ‘벌레가' 살기 좋은. 하지만 실제로는 벌레조차 살 수 없는 집이었던 거다.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거라는 바선생도 차마 살아갈 수 없는 힘든 환경이었던 것.. 이리도 암담한 상황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불을 끄고 봉사를 하는 것이다. 불을 끄고 바닥을 쓸고 있을 때는 이것이 콩인지, 알인지, 혹은 음식물인지 알 수 없다. 자세히 보지 않아야 낫고, 오래 보지 않아야 낫다. 이 집이 그랬다. "왜 불 끄고 봉사하고 있냐?" 잠시 불을 켠 조장은 조용히 다시 스위치를 내렸다.
보통 이렇게 인상적인 냄새를 뿜어내는 집은 야외 작업이 인기가 많다. 벽지 재단이라든지 풀칠이라든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야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단을 하러 가는 길은 항상 동물 우리를 지나야 했는데, 우리 속에는 전혀 관리의 손길이 닿지 못한 오리, 염소, 개 가 있었다. 우렁차게 짖으면서도 꼬리를 흔드는 털이 엉망으로 뭉쳐있는 개를 보는 것도, 반 시체의 오리와 완전한 시체의 오리에게서 나는 냄새도 힘들었다. 어디에도 도망가지 못했고 어디에나 냄새가 따라왔다.
한참 동안이나 도배를 했지만,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워낙 짐이 많은 탓에 짐을 빼는 것만 해도 한참. 쌓여있는 짐을 볼 때면 다시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도 이장님이 오셔서 이 물건은 다 버리겠다고 하셨다. 부엌의 음식물과 온갖 물건이 모두 땅에 묻혔다. 그야말로 대공사가 계속 됐다. 점심시간에는 도저히 실내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무더위 쉼터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밥을 먹으면서 쉼터에 모여 계신 마을 어른들에게 그 집에 대한, 어르신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아들이 몇 명이라더라, 못 본 지는 오래됐다더라.. 많은 얘기가 들려왔지만 애써 귀를 닫았다. 우리는 집을 보고 봉사할 뿐이지, 감히 수혜자의 인생을 재단해서도, 섣부른 동정을 해서도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밥을 먹고 있자니 마치 악몽 때문에 선잠에서 깬 기분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 온 건지, 다시 그곳으로 꼭 돌아가야만 하는지.. 봉사를 할 때는 그리도 흘러가지 않던 시간이 점심시간에는 어찌나 빨리도 가는지! 괴롭고, 슬프고, 힘들고, 그만두고 싶지만 돌아가야만 했다.
‘그 집’에서의 봉사는 어떻게든 끝이 났지만, 그 집의 향기는 옷과 양말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8박 9일 동안 마음 놓고 땀을 흘릴 수 있었다. 그 냄새에 비하면 내 땀은 향수니까... 누군가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 냄새는요.. 그냥 제발 아무런 냄새가 안 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