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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Oct 23. 2021

흥얼이의 다양한 사용법

흘러나오는 대로 냅두면 됩니다




어떤 감정이 차오를 때 흥얼이는 그걸 음악으로 바꾸라고 부추긴다. 생각 없이 낙서를 해도 어떤 날은 뾰족한 그림을, 때로는 둥그런 모양만 그리는 날이 있는 것처럼 그날의 감정을 따라나오는 노래들도 때마다 다르다. 모처럼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흥얼이가 속삭인다.

 

‘일단 아무 거나 쳐 봐.’


그러면 그날의 감정과 생각을 담은 노래를 이리저리 만들어본다.


감기 기운 때문에 괴로웠던 날 남편이 끓여준 생강차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그 즐거움을 표현하려고 피아노를 아무렇게나 뚱땅거리다 녹음을 했다. 음성파일 제목은 이렇게 붙였다. ‘생강차는 내 친구’


안팎으로 울적한 일이 이어져 삶이 덧없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째서 괴로움은 생김새만 바꿔가며 한결같이 찾아오나 생각하다가 문득, 무엇인가가 내 마음 속에 살며 슬픔과 괴로움을 대신 먹어주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렁이’는 그 과정에서 나온 노래다.



마음에 지렁이 한 마리 키우는 거라고
생의 비참함 위에 나선을 긋고 지나가는,
서글픔이며 외로움을 먹고 크는 지렁이
새파란 청춘을 일평생 횡단하다
가끔씩 이로운 변을 보는 지렁이
덕분에 씨앗이 움트고 꽃 피는 날 오겠지






목적을 위해 흥얼이를 불러내는 경우도 있다. 임신 시기에 나는 아기를 위한 특별한 자장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전문 음악인을 남편으로 두었으니 이왕이면 부부가 함께 곡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남편이 작곡을 하고 내가 노랫말을 붙이면 어떨까? 임신 초기라 태교에 큰 뜻이 없던 남편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남편 흥얼이의 목을 비틀어 결국 곡을 받아냈다. 남편의 직업상 그쪽 흥얼이는 돈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자장가가 완성됐다. 그후 밤마다 태교삼아 배에 대고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꿈 속을 아장아장 걸어가는

우리 아기의 발자국을 따라가네

사랑이 소복소복 쌓인 마음

그 꿈길에서 무슨 노래 듣고 있나요

(후략)






갓 태어난 아기는 첫 폐호흡을 하며 우렁차게 울었다. 내가 출산했던 병원은 출산 직후 부모가 간단히 목욕 시켜주는 의식이 있었다. 우는 아기를 따뜻한 목욕물에 담그자 아기는 겁에 질린 것처럼 더 소리를 높였다. 아기는 온통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누워서 지켜보다가 곁에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자장가 불러줄까?”

남편과 내가 나직이 자장가를 불러주자 놀랍게도, 갓 태반을 벗은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편안한 표정으로 부모의 노래를 들었다. 낯선 혼돈에서 익숙한 소리를 듣고 안심했을 아기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다. 그후로도 아기를 재울 때 늘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아이가 자라서 주관이 뚜렷해지자 “아장아장이 아니라 쿵쾅쿵쾅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전 이제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라고요.”라고 했다)






만 3개월의 새봄 (현 7세)








그렇게 흥얼이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나는 아기 돌봄의 거의 모든 행위에 노래를 붙여서 불렀다. 굳이 적어보자면 왠지 낯부끄러운, 이성의 작용이나 필터링 없이 저절로 흘러나온 무맥락 직관적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아기와 눈을 마주치면 부끄러움은 잊고 방실방실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기저귀 꺼내는 노래, 기저귀 갈아주는 노래, 우는 아기 달래는 노래, 물 마시는 노래, 바나나 먹는 노래 등 그냥 나오는 대로 불렀다.




글에 악보 첨부하려고 시벨리우스 다운 받았다





어느새 픽스된 노래들은 동일 행위를 할 때마다 입에서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별 것 아닌데 중독성이 강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남편도 때에 맞춰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항마력이 좀 필요했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져서 밖에 나가서도 버릇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신기하게 듣던 누군가는 ‘혹시 다른 노래가 더 있냐’며 조용히 묻기도 했다.


돌봄에 특화된 흥얼이 목록에는 4/4박자 기본 리듬을 딴 챈트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기 다리를 펴주며 쑥쑥체조용으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상황에 맞게 가사를 바꿔가며 불렀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 아이도 같이 개사하며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흥얼이는 이렇게 쓰는 게 가장 좋다. 지나친 고민이나 평가 받는 두려움 없이, 하나의 사유가 이끄는 단순한 노래로 내뱉고 보는 것. 민요도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게 아닐까. 

짧은 노래가 어느 한 순간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면 이미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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