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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Oct 24. 2021

다시 제자리로

그냥 '음악 좋아하는 사람'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한동안 실패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클래식으로 입시를 해보겠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아. 실용음악과는 더 낫지 않을까?'

신입생으로 첫 학기를 보내면서도 내내 고민했다. 재수를 해야 할까? 여기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은데?



작곡과에 절대음감 수백 명이 지원한다면 문예창작학과에는 고등학교 때 전국 백일장에서 상을 휩쓸어 본 아이들이 다 모였다. 심지어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도 서로를 이미 알고 있었다. 시상식에서 오며 가며 봤다나.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사실 나는 예비 1번을 받아 최종 합격 했다. 이 정도면 무난히 들어왔다 생각했으나 입학 후에 보니 예비 2번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마지막 예비합격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게 신입생 오티 때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에게 “여기 예비 받고 온 사람 있어?”라고 묻고 다닌 탓에 내가 마지막 합격자라는 걸 공공연히 알린 셈이 됐다. 사실 처음엔 내심 좋았다.


‘이거 상향지원의 성공사례잖아? 담임 짱이다!’


하지만 누군가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럼 네가 우리 과 문 닫고 들어온 거네?”



덕분에 누가 수석인지는 몰라도 내가 꼴등인 건 확실히 알려졌다. 학기가 시작되고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예체능계열 전공자라면 공감하겠지만 실기 잘하는 상위그룹은 따로 있으며 다들 그 사실을 대체로 인정한다. '잘하는 애'는 누가 봐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피드백만 들어도, 그들의 결과물을 딱 봐도 급이 다르다.



반면 누가 봐도 하위그룹인 학생들도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진지하고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내 얕음과 가벼움을 잘 숨기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숨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합평 시간에 다 들통나니까. 1학년 1학기 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이 제출한 시를 하나씩 읽고 피드백하시고는 끝까지 내 시만 읽어주시지 않았다. 수업 마치고 어찌 된 일인지 여쭈니 기가 막힌 대답이 돌아왔다.


“네 시는… 그건 시가 아니었어.”


하, 시심이 하늘에 닿지 못해 그랬을까. 시가 아닌 시를 쓰며 그렇게 첫 학기를 견뎠다. 딱히 열심히 쓰려고 하지 않으니 평가도 좋을 리 없었다. 진지한 열의로 가득한 학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나는 자꾸 겉돌았다. 초등에서 중학교까지는 숱하게 백일장에 나가고 문예반에서 활동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유명한 작품이나 고전을 읽지도 않았고 다들 당연한 듯 논하는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글쓰기가 부담스럽고 스스로가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면 늦은 밤 돌아오는 길에 교회에 들러 원래 습관대로 피아노를 마음껏 꽝꽝 내리치며 연주했다. 악보 없이 피아노와 나 단 둘이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치고 싶은 대로 치고,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다 보면 그게 다 새로운 노래가 됐다. 녹음이나 채보도 하지 않으면서 흘러오는 것을 표현하고 다시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될까?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음반을 발표하지 않아도, 연주 실력이 보잘것없고 노래가 반짝이지 않아도, 구현할 수 있는 음계가 별로 없어도, 지나치게 애쓰지 않아도 전처럼 놀이하듯 곡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삶도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걸 하는데 타인의 기준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 음악은 그러면 안 되나?



잘 못해도 그냥 할래






글을 쓰면서, 혹은 다른 직업을 갖고 살면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꼭 음악을 전공하거나 관련 종사자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는 내게 '재주가 많으면 빌어먹기 쉽다'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재주가 있는 게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격감 없이 그 말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세뱃돈 모아 샀던 피아노는 결혼한 큰언니 집으로 옮겼다. 성악을 전공한 작은언니도 결혼을 해서 새 피아노를 들였다. 이제는 두 언니네 집 어딜 가도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종종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마음껏 피아노를 치며 게으름을 부렸다. 악보는 필요 없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진행하면 내면의 흥얼이가 알아서 판을 깔았다.



그렇게 놀이로서의 작곡을 다시 시작했다.








(커버이미지 출처 Photo by Pablo García Saldañ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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