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감정도 흥얼이와 함께
대학을 졸업한 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보급형 디지털피아노를 샀다. 이어폰을 끼면 밤에도 마음껏 건반을 두들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때부터는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제대로 채보를 하기 시작했다. (비싼 돈 내고 작곡 레슨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춘기를 지나며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을 정리할 때 꼭 글로 써서 푸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 마구 적다 보면 조금은 차분해지고 객관적으로 현재를 볼 수 있었다. 남이 했던 말이나 내게 든 생각들의 기저를 헤아리기도 하고,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던 내 속내를 발견하면 ‘아, 또 밑바닥 관광 시즌이 왔군’ 생각하며 종이에든 미니홈피에든 부지런히 적었다.
그런데 글을 써도 다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고독감은 떠벌릴수록 더 고독해졌다. 우울에 대해서 쓰는 것만으로는 그것이 지나가길 기다리기 어려웠다. 그럴 때는 노래를 만들었다. 낮은 음역대에서 우울한 분위기로 천천히 연주를 시작하면 우울에 흠뻑 빠진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편했다. 애써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무르다가 내 마음을 가사로 옮겨 곡을 만들었다. 그러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감정에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푹 빠져있던 감정에서 물러나 그것을 관망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그 성분을 헤아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100% 사랑일 리 없다. 고급 원료를 함유했다는 화장품도 결국은 ‘정제수’가 가장 많이 들어있는 것처럼, 내가 사랑이라 믿은 그것은 아마도 높은 비율의 설렘과 적당한 외로움, 동경, 애정, 얄미움, 질투가 그럭저럭 섞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미움에도 연민, 억울함, 부끄러움, 그리고 미량의 이해심이 섞였겠지.
민감하게 마음을 살피고 저변에 숨은 동기까지 찾아 감정들의 이름을 붙이고 나면 꼭 내면의 지도를 만드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분노의 영역인데 그 안에 슬픔의 물길이 지나고 있다’던가, ‘이곳은 욕망 구역인데 <숨기자>와 <드러내자>가 오래전부터 전쟁 중이다’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복잡한 감정을 헤아리고 난 뒤에는 그게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얼른 글로 남기거나 곡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음악을 통과할 때 비로소 해소되는 감정도 있다. 누군가와 내가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냥 성격 차이로 치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어떤 약한 부분이 닮아서 본능적으로 피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달라서, 혹은 닮아서 반할 수도 있고 갈라설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며 상심한 감정을 보내주고 마음의 기록을 남기려고 아래 곡을 만들었다.
<너는 나였고>
1.
어떤 말로도 우린 끊어졌을 거야
많이 노력했었지 너도 알다시피
어떤 위안도 필요 없을 만큼
나는 확신했었지 너도 그럴 거야
서로 달라서 배울 수 있었다고
서로 닮아서 편안했었다고
내가 감춰온 서투름과 나약함
다 보일 수 없어서 아닌 척했었던
그 모습까지 닮은 너를 이제 알았어
2.
짧은 이해와 순간의 진심에
우리의 모든 걸 맡길 수 없어서
애써볼수록 무거워진 공기
너도 느꼈겠지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작은 균열에 내가 무너졌던 밤
너의 나약함 속에 내 모습을 보았지
너는 나였고 그것이 맘을 묶어
오래 참았던 대답 들려주기로 했어
어떤 걸로도 우린 끊어졌을 거야
많이 노력했었지 너도 알다시피
어떤 위로도 필요 없을 만큼
나는 확신하고 있어 너도 그럴 거야
사시사철 고르게 건강한 정신을 위해 각 계절마다 장점을 잊지 않으려 하지만, 겨울은 좀처럼 사랑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겨울의 엄청난 생명력을 기억해보기도 하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하도록 추운 날이면 분개심을 애써 잠재우며 생각하는 것이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저 나무는 눈에 파묻힌 와중에도 남몰래 꽃눈과 잎눈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을 거라고. 꽁꽁 얼어버린 땅은 알고 보면 편안하고 긴 휴식 시간을 보내는 중일 거라고.
마음에도 사계가 있다. 이 정도면 잘 지낸다고 생각할 때 잊지 않고 영혼의 겨울이 찾아온다. 한때는 파릇파릇했던 소망이 마치 다 죽은 듯 보이는 시절. 흐린 하늘처럼 우중충한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는 시간.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는 겨울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실제 겨울과 비슷하고, 바로 그 점이 특히 가혹하다. 봄이 올 것을 알고는 있지만 혹독한 추위가 몇 날이고 계속되면 봄은 전설 속에나 등장한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봄을 잊은 채 봄을 기다리게 되더라.
계절로서의 겨울과 마음의 겨울을 동시에 맞이하기도 한다. 향후 몇 달은 고통과 우울만 이어질 것이 빤한 상황에서 괴로움을 어디로 기울일지 몰랐을 때, 아래의 노래를 만들었다.
<겨울의 법칙>
바람 없는 곳을 찾아 달리지 못해
뾰족한 기류 속에 흔들려야 해
일찍 끝내 달라고 조를 수 없어
마음에 발자국만 남기고 가 버린 이름들을 세며
원했으나 잃은 것들과
가졌으나 아픈 것들이
속에서 종일 두런거리는 날들
온기 없는 빛, 가라앉는 생각
꽃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채
뭔지 모를 소식을 기다리다 얼어가는 날들
바람이 주는 글자만 읽어야 하네
글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지만 음악의 영역은 더 넓어졌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원고와 씨름하다 겨우 마감하고 나면 독소를 빼내듯 피아노 앞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손 가는 대로 아무 거나 치면서 흥얼이와 조우했다.
가까운 거리에 나처럼 사는 친구들이 더 있었다. 생계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밤마다 노래를 짓는 이들이었다. 만날 때마다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릴 적 친구들처럼 우리는 만날 때마다 '곡 좀 썼어?'하고 안부를 묻고 자기가 만든 노래들을 들려주곤 했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나도 놀이 작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 만난 연인이 결혼을 생각하듯, 음악 얘기만 나누던 우리도 하나의 결말을 꿈꾸기 시작했다.
한 팀이 되는 것.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것.
(커버이미지 출처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