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열차' 타고 떠난 싱잉앤츠 정규 2집
아시다시피, 저는 남편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싱잉앤츠'라는 밴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려 작년! 5월에 발표된 앨범의 뒤늦은 소개글을 남깁니다. 발매 당시 올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왠지 다 가라앉은 뒤에 알리고 싶은 이상한 심보가 들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아주 잘 가라앉은 것 같네요.
노래 제목 함부로 짓지 말라고 합니다.
음악가는 자기 노래를 따라간대요. 이별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항상 이별을 한다나요.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도 삶에서 이별과 죽음, 상실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일단 외면하고 있을 뿐, 우리 모두는 각자의 파국을 향해 살아가는 셈입니다. 이별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모든 만남의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모든 멤버가 결혼을 했던 2014년에 정규 1집을 발매했습니다. 알다시피 결혼은 쉬운 일이 아니고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없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앨범 작업을 병행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어요. 1집 발매 후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아쉬움도 남았던 저희는 2집만큼은 여유 있게 잘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천천히 준비했지요.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멤버별로 아이를 가지면서 다시 쫄깃한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나면 연습이고 녹음이고 아예 모임 자체가 더 어려울 것이 빤하니 무조건 출산 전에 마무리하기로 했지요. 하지만 밀어주는 이도, 당겨주는 이도 하나 없이 생업까지 이어가고 있어 작업이 순탄하지 못했어요. 예정일이 가장 늦은 저희 부부의 출산까지 마감하기로 했지만, 저는 결국 아기를 둘러업고 녹음실에 갔습니다. 그렇게 미뤄지고 또 미뤄지다가 아이들의 첫 돌이 다 되어서야 앨범을 발매할 수 있었어요.
혹자는 우리가 생명의 신비와 기쁨을 경험했으니 아이를 향한 사랑을 담은 곡을 발표하면 어떻겠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사실 2집은 막연하게 사랑에 관한 노래를 담자고 얘기한 적이 있지요. 하지만 생명력과 사랑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생의 끝과 파국을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2집에는 '모순'이란 노래도 들어있답니다) 그렇게 정하고 곡을 모은 건 아니었지만, 모아놓고 보니 그렇더군요.
앨범 작업을 앞두고 각자 곡을 지어 녹음한 것을 들려주곤 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울림이 컸던 곡은 김명재의 '소문'이었습니다. 전주도 없이 불쑥 말을 건네듯 노래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요
누구든 너무 쉽게 옮겨왔던 소문
삶만큼 흔해서 귀하지 않던 진실
그대를 품고선 헤아려지지가 않네요
그리고 쉼 없이, 스스로 웅변하는 죽음의 소문 앞에서 지극히 담담하게 사랑을 고백하며 곡이 끝납니다. 저는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듣고 또 듣다가 이 곡이 2집의 타이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집의 타이틀이 <우주의 먼지, 그러나 사랑받았네>였던 것처럼 문장형의 긴 제목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긴 토론 끝에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요>가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저는 몇 곡의 작사와 약간의 연주, 짧은 가창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자작곡으로 '답장'을 발표했습니다. (김동률 님께서 최근 동명의 타이틀곡을 발표하셨죠. 덕분에 거인의 발등에 올라 탄 느낌!)
그대 내게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나는 그대에게 답장을 쓸 거예요
당신과 나의 간격에 대해
그 간격의 온도에 대해
그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대 눈빛과 한숨에 답해요
당신과 나의 고독에 대해
그 고독의 벼랑에 대해
갓 자녀를 낳은, 그러니까 인생에서 드물게 겪는 결실과 기쁨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든 예술적 자아를 구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내가 현재 겪는 감정을 그대로 곡으로 발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그리 개성적인 노래는 아니었는데 남편이자 기술자인 이민형이 일렉트로닉으로 멋지게 편곡하여 특색을 살려주었습니다. 김명재의 보컬이 권태로운 느낌을 잘 나타내 준 것 같아요. 간주에서 비트가 바뀌면 여러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파국열차'는 2집의 더블 타이틀곡이자 거의 유일한 '빠른 곡'입니다. 남편이 작곡과 편곡을 하고 제가 가사를 썼지요. 망할 것이 빤한 모험에 대한 이야기랄까요. 앨범 준비하면서 농담처럼 던진 말이 정말 제목이 되었습니다. 위악 같지만 막상 음악을 들어보면 훨씬 긍정적이며 즐거워요. 앨범 자켓 이미지도 이 곡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문제는 2집 앨범이 이 노래 따라 정말 파국으로 칙칙폭폭 떠났다는 거예요. 오래 만지작거리며 선뜻 선보였고, 우리끼리는 그래도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소리 소문 없이 망한 것 같습니다. 노래 제목 함부로 지으면 안 된다는 말, 인정합니다. 소속사, 기획사도 없으니 힘이 있을 리 없고 작은 몸부림 격으로 제 책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의 에필로그에 앓은 소리를 남겼지요.
지난 연말, 제주의 몇 서점에서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의 북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제가 북토크를 맡고 싱잉앤츠가 공연을 했어요.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많은 분들을 만났고, 그동안 얼마나 활동을 안(못) 했는지 소수의 팬들이 육지에서 건너오셔서 함께 해주셨어요. 덕분에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용기를 내서 더 말을 건네고 손 내밀 수 있을 것 같아요.
SNS에도 반가운 리뷰가 많았지만 저희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짧지만 강력한 리뷰 기사를 소개해요.
'선하지만 날카로운 정신으로 옆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음악.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 밖의 구구절절한 설명은 하단의 앨범 보도자료로 대체하겠습니다,라고 하려 했지만 위의 글이 더 질척 질척하니 큰 의미가 없겠군요. 그래도 너른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앨범도 한 번 들어보셔요. 특히 마음에 어떤 말도 남지 않는 텅 빈 날에 자동차 오디오로, 이어폰으로 가까이 들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정규 1집 발표 후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무언가를 얻기도 했고 잃기도 했다. 희망 위를 걸었으나 절망에 도달하기도 했다. 묻기도 했고 답을 헤아리기도 했다. 머뭇거리면서도 또 하루씩 살아냈다.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하진 않았다. 밝고 둥그런 꿈이나 반짝이는 혜안은 없어도 우리의 끝은 거의 다 비슷할 거라는 걸 안다. 어쨌든 삶은 주어졌고, 끝을 아는 자들은 오히려 담담하게 걸어간다. 즐겁게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면서, 함께 걷는 이들을 사랑하면서.
싱잉앤츠 정규 2집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요>가 발매되었다. 자아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파국을 응시하고 다양한 높낮이로 노래한다. 잔잔한 소회, 날이 무딘 비판, 이별의 선언, 망할 게 빤한 모험, 고마움과 미안함, 사랑이라 쉽게 뭉뚱그리기 어려운 세밀한 감정과 고백까지 조심스럽게 담아 선보인다.
생과 사랑, 소유의 끝은 정해졌다. 살아있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사랑에도 끝이 존재한다. 만났다면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떠나보낼 것이다. 무언가를 가졌다면 언젠가는 버리거나 어딘가에 두고 떠날 것이다. 이 명징한 진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현재 앞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쥐고 놓는 모든 일에 정직해진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더욱 정직하게 절망하고 욕망하며 포기하고 의지를 다지며,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일이다.
(2017.5.25 앨범 소개글)
멜론 :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065217
벅스 : http://music.bugs.co.kr/album/20099349
네이버 :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2013400
지니 : http://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0950308
엠넷 : http://www.mnet.com/album/1993199
싱잉앤츠의 비루하지만 어쩐지 웃긴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ssinging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