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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Dec 26. 2017

너를 사랑하는 건 나의 운명



                       

너는 왜 이렇게 예쁜 걸까.


모든 아기들은 원래 예쁘다. 신생아에게 세속적 미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갓 태어난 생명에게는 타고난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내거나 평가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

아기는 애타도록 사랑스러웠다. 울어도 귀엽고 열심히 힘주어 선보인 응가조차 예쁘다.

엄마는 자주 말씀하셨다.
“원래 지 새끼는 그렇게 이쁜 거야.”




내가 낳았다는 이유로 한 존재가 나에게 온통 쏟아진다. 너무 작아서 바스러질 것 같은 아기. 새로 만들어진 몸의 감촉. 근육의 움직임에 불과한 표정이나 몸짓에도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즐거움. 갓난아기와 함께 살면 고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행복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빠를 쏙 닮아 보였다. 사실 임신 때부터 그렇게 소망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를 낳는 것. 임신 기간 내내 남편의 사랑을 흠뻑 받았기 때문에도 그렇고, 인간적으로도 그를 좋아하고 존경해온 까닭도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아기가 읽었는지 태어난 후 자기 몸 곳곳에 있는 아빠를 보여주었다. 눈썹이며 눈, 코도 기가 막힌 데다 발가락과 발 모양까지 남편을 닮았다. 비록 내 유전자를 찾기가 좀 어려웠지만 그건 상관없다. 남편 역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도 모두 인정했다. 아빠 승!



출산 직후 입원실에 아기를 데려와 보낸 2박 3일은 쉽지 않았지만 분명 좋은 시간이었다. 엄마와 분리되어 불안할 아기에게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계속 들려주고 품의 냄새를 맡게 해줬다. 자꾸만 사랑을 속삭이며 안심시켜주었다. 모유가 금방 나오지는 않았지만 수유가 피차 익숙해졌고, 아기의 필요를 살피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아 태교에 다소 미적지근했던 남편은 아기를 직접 본 이후 눈에서 하트를 발사하며 적극적으로 육아에 임했다. 이제 진짜 아빠가 되었으니까.




육아의 산은 역시 생각보다 가파르고 험했다. 조리원을 퇴소하고 돌아온 첫날, 하필 남편은 중요한 용무가 있어 나가야 했고, ‘왕초보’ 엄마인 나 혼자 헐레벌떡 눈코 뜰 새 없이 아기를 돌보았다. 다행히 중간에 언니가 와줘서 밥은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입주 후 첫 용변을 처리한 뒤 닦아주려고 안아 올렸는데 그새 2차 대변이 나와 방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겨우 지탱했다. 언니가 급히 달려와 바닥을 닦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신없이 수습을 하고 나서야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아기를 재운 뒤에야 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이건 전쟁이다.’

장난이 아니었다. 임신과 출산은 나름대로 책도 찾아가며 준비를 했는데, 육아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아는 게 없다니. 충격도 컸지만 책을 넘겨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렇듯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다가도 아기를 재운 밤이면 오늘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본다. 방금까지 봤으면서 또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는 고슴도치 엄마가 됐다. 아이와 함께 보낼 날들이 두려우면서도 기대됐다.






아기가 나오기까지 난 너무 조급했다. 예정일에 태어난 셈이니 하나도 늦지 않은 건데 나는 몸이 힘들다고 내심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기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나와 주었다. 내가 격려할 때마다 아기는 얼마나 힘을 내어 적극적으로 움직였는가. 정말 장한 내 딸. 고맙고 고맙다.



품에 두는 것과 낳고 키우는 건 정말 다른 세계다. 심신이 지치고 감정이 들쑥날쑥해도 처음 마음을 기억하리라 다짐해본다. 생각과 감정을 붙들고 자주 감사해야지. 각오를 다지고 하루하루를 맞닥뜨리며 나 또한 기어코 성장할 것이다.

네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아기에게 속삭여본다.




우리는 함께 자라는 사이야.









넌 이만큼 자랐는데 나도 더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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