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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Jan 02. 2018

엄마의 그늘

돌봄노동과 만성적 무력감에 대하여


“원래 아침에도 이렇게 많이 울어?”


남편이 오전 낮잠을 앞두고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며 말했다. 그는 프리랜서 겸 대학원생으로서 거의 매일 아침마다 집을 비웠다. 그 빈집에 나와 아기만 있었다. 두 사람이 있어도 집은 빈 것이다. 어떤 면으로는 그렇다. 아무 세간도 없이 텅 빈 집도 빈집이고, 가구들로 채워져 있어도 아무도 없다면 그것도 빈집이다. 사람이 들어와 있어도 그 삶이 가구와 다를 게 없다면 그 집 또한 빈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하루를 다 보낸다. 인터넷 공유기나 냉장고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작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집은 내가 있어도 빈집과 같다. 나는 거기에 남겨진 존재로서 하루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남편이 바빠서 짧은 며칠간 오롯이 아기를 혼자 돌보고 나니 부쩍 외로워졌다. 아기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재워서 더 잘 수 있었지만 그걸로는 소용없었다. 남편이 살갑게 대해주지만 그걸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이 일렁이는 것의 정체가 뭘까. 분명 내면에서 변모하는 뭔가가 있는데 좀처럼 잘 잡히지 않았다. 내겐 이런 쓸데없고 진지한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기를 키우는 동안 이런 시간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줌마’의 특성, 그러니까 어딘지 드세고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말이 많지만 대체로 논리적이지 못하고, 무엇을 해도 어딘가 서툰 모습을 요즘 내게서 본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적고 책을 읽는 것이 사치가 된 삶. 당연히 언어 능력은 떨어지고 사회성도 조금씩 잃어간다. 오래 굶은 사람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것처럼 소통에 주린 사람의 대화 방식은 서툴고 급하다. 하찮은 얘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질문을 퍼붓거나 주눅 들어 눈치를 자주 본다.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나는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우는 아기를 달래며, 혼자 깨작깨작 밥을 먹으며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린다. 그가 내 짐을 덜어줄 것을 기대하고 그에게 하루 동안 쌓인 말들을 늘어놓을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자의가 타의에 의해 제한될 때에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한이 익숙해진, 가구가 되어버린 삶.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전업주부의 현실이다.




내가 육아를 잘 몰랐을 때 두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말했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복직할 자신이 없다고. 이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업무 처리의 기준이 높아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기어이 해냈는데, 복직 이후에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직면할 일이 두렵다고 했다. 그는 유능한 교사였다. 그 힘들다는 임용도 한 번에 통과했으면서 지금은 왜 그렇게 떨고 있을까. 당시에는 의아했으나 이제는 그 마음을 잘 알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고된 육체노동이자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당연히 기술이 필요하고 거기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전인적인 희생이 요구되며 하루 종일 아기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서 출산 전의 삶은 점점 희미해진다. 역사와 미디어와 대중과 사회가, 그러니까 거의 온 천하가 여성에게 엄마의 의무를 부르짖고 있는데 도무지 거기서 탈출할 수가 없다. 그 의무 안에서 한 개인의 꿈은 무기한 유예되고 직업 능력도 억압을 받는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직업이나 습관으로도 그랬다. 마음에 와 툭 부딪치고 가는 것들에 대해 뭐라도 써야 정리되고 풀리는 성격이지만 육아를 하면서는 심경조차 간단히 표현할 수 없었다. 글을 쓰려면 독서와 사유를 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는 없고, 사회 활동이 줄어드니 논리력과 어휘력도 떨어지고, 그렇게 매사에 자신감을 자꾸 잃었다.



학교의 흔한 체벌 중 학생을 책상째로 교탁 옆에 옮겨 앉히는 벌이 있다. 모두의 시야 안에 둠으로써 수치를 느끼게 하고 행위를 제한하는, 일종의 투명한 감금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학생이라도 그 자리에 앉는다면 소극적이고 조용해질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교화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감금당한 사람은 자존감을 지키기 어렵다. 의지가 속박된 경험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육아를 하면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의지,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리려는 의지가 꺾인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분명 자의적으로 희생하지만 매일 의지를 꺾고 꺾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오직 속박이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도, 자고 싶을 때 잘 수도 없다. 심지어 화장실도 제때에 갈 수가 없다. 누가 집어넣었는지 모른 채 매일 똑같은 삶에 감금된다. 엄마라면 이래야 한다고 떠드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러면 이제는 이게 자의적인 희생인지도 불분명해진다. 감금은 자신감을 위축시킨다. 임신과 출산으로 이미 다 부서져버린 몸으로 매일 고된 노동을 하고 이조차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아득해진다. 하지만 아이 엄마에게 사회를 향해 분개하며 의사를 표현할 시간 같은 건 없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남편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제 종일 기다렸던 남편과 드디어 대화를 하는구나.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남편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하고 싶었다. 나의 피로는 잠만 자는 걸로 채워지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결국 일과를 비웠다. 그는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늘 바란다. 아이 낳고 나서도 남편은 내가 다시 작업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자기가 애를 볼 테니 책도 읽고 글도 써보라고 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역시 시간은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정신없이 밥을 지어 차려 먹은 뒤 육아와 빨래를 분담했다.



그는 아기를 재우며 내게 걱정 말고 책을 읽으라고 했다. 덕분에 얼마 전에 야심 차게 구독하기 시작한 문예지를 집어들었다. 그러다 평소처럼 아기가 잠든 뒤 눈 좀 붙이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아기 자는 동안 여보가 책을 마저 읽으면 좋겠어.”

남편은 주력 업무 시간과 잉여 시간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리고 생산적인 활동 없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걸 아까워한다. 자신이 시간을 들여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 내게서 생산이 있길 바라는 것이다. 잠시 아기를 보면서 내 생활의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것 같아 좀 당황했다. 그렇지만 결국 책을 보다가 나도 잠들었다.



그날 밤 아기에게 수유를 하며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한 그것을 보았다. 만성적인 무력감. 코끼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길들이려면 어릴 때부터 꼼짝 못하게 묶어놔야 한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갖은 애를 써도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코끼리는 만성적 무력감에 빠지고, 이후에 성장하여 충분한 힘이 생겨도 도망갈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생겨도 나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육아는 물론이고 이미 산적한 가사 업무가 뒤이어 기다리는 하루. 시간이 나도 책을 읽느니 잠을 택한다.



남편은 집에 있는 동안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지만 돌봄 노동에 들이는 절대 시간은 당연히 나보다 적다. 나는 남편을 보면서 단편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떠올리며 가치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 종일 아기에게 매여 사는 나는 아예 판단할 대상을 잃어버렸다. 내가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잊었다. 그 무력감을 발견하고 퍽 울적해졌다.



그래도 이런 우울은 반갑다. 생각을 활짝 열어 사유를 이어가게 했고 이런 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내 우울의 원인을 읊었더니 오히려 그는 눈을 반짝이며 글로 쓰라고 한다. 피로와 싸우며 겨우 하루를 견디다시피 하는데 시간 조금 났다고 ‘창작자’로의 모드 전환이 곧바로 이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모처럼 눈을 빛내며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지.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인간이었지.

살기 위해서 작게나마 몸부림쳐 봐야겠다.














외출을 해야 그나마 봐줄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습니다. (이것조차 지난 여름의 모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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