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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Jan 16. 2018

모유수유의 빛과 그림자

모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기계적으로 아기의 기저귀를 확인해본다. 흠뻑 젖었다. 소아과 의사는 아기 소변 양이 어떤지 꼭 묻곤 한다. 나는 ‘완모’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모유만 먹이는 경우에는 수유 시간만으로 수유량을 판단하기 어렵다. 아기가 제대로 모유를 섭취한다면 묵직한 기저귀가 하루에 일곱 개는 나와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맞게 가는 것 같았다. 아기의 소변 양이 엄청났으니까.



나는 아기에게 새 기저귀를 채운 뒤 소변으로 묵직해진 기저귀를 손에 들고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기는 따로 물이나 보리차를 마시지 않는다. 아기의 식량은 오직 모유뿐. 그렇다면 기저귀를 흠뻑 적신 이 물은 사실 다 내가 마신 것이다. 정작 나는 모유수유를 시작하고 소변 양이 확 줄었다. 물도 자주 마시고 국물도 많이 먹지만 하루에 고작 한두 번 정도 소변을 본다. 많으면 세 번. 나머지는 전부 아기에게 주고 있다. 내가 마신 물이 아기의 소변이 되어 매일 기저귀를 푹 적신다.



그뿐 아니다. 나의 식사가 곧 아이의 음식이 된다. 그래서 밥을 많이 먹어도 돌아서면 금방 허기지고, 육아에 지쳐 기운이 없어도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울 수가 없다. 밥을 퍼 담고 반찬을 만드는 일이 성가셔서 그냥 라면이나 끓여먹고 싶은데 양심상 그럴 수 없다. 의무적으로 매일 두유를 마시고 밥을 꼭 챙겨 먹었다. 어떤 날은 두부를 포장만 뜯은 채로 간장을 쳐서 먹었다. 두부를 조리할 여력은 없지만 그래도 먹어야 하니까. 모유 수유를 시작한 후 초반에는 매일 고기가 그렇게 당겼다. 입에서 원하는 식품군은 곧 몸에 필요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소 등심을 구워 먹고 족발이나 보쌈을 배달시켜 먹었다. 남편은 수유부인 나의 영양 상태를 늘 신경 써 주었다.





모유 수유를 시작한 이상,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일생에서 가장 이타적인 몸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아기의 식료품 공장이 된 것 같았다. 나의 신체는 원료를 넣고 가공하여 아기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기계와 다름없어 보였다. 다만 칼슘 섭취량이 부족할 때 그걸 내 뼈에서 가져간다는 점이 기계에는 없는 기능이겠지. 수유를 하는 순간에는 아기가 사랑스럽고 예뻐서 몸을 바쳐서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탯줄이 없어도 아기와 긴밀히 연결된 것 같아 황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유수유는 내게 벅찬 일이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모유' 이 단어를 들으면 일반적으로 엄마의 사랑, 아기의 필수 영양소, 애착 형성 등을 연상할 것이다. 그중 가장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따로 있다.


공짜.


모유수유를 하면 분유값이 들지 않는다. 외출할 때 보온병과 분유통과 젖병을 싸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도 있다. 모유수유를 하면 밤에 아기가 울 때 부랴부랴 물 끓이고 온도 맞춰 분유를 타 오지 않아도 된다. 사실은 그래서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엄마의 사랑이야 분유로도 충분히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모유수유에 대한 내 열정은 대단했다. 임신 때 병원에서 하는 모유수유법에 대한 강의도 찾아가서 듣고, 거기서 배운 가슴 마사지와 유두 팩을 주기적으로 실행했다. 출산하자마자 모자동실을 감행한 것도 모유수유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완모’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어이 해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모유는 공짜가 아니다. 분유도 마찬가지겠지만 모유에도 큰 대가 지불이 따른다.

출산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면 이제 두 번째 난관을 지나야 한다. 젖몸살이다. 아기도 낳았으니 더는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으나 겪어보고 나니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게 끔찍한 경험이었다. 출산 이후 며칠이 지나면 가슴이 바가지만큼 퉁퉁 불며 겪어본 적 없는 통증이 찾아온다. 가슴이 아파서 잠도 설치고 편하게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었다. 개인마다 경우가 달라서 바로 젖을 잘 먹일 수 있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젖이 돌면서 유방에 울혈이 심해졌다. 산후조리원 원장님은 그걸 풀어줘야 젖이 잘 나올 거라며 특별 관리를 해주셨는데, 정말이지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



가슴 마사지가 ‘제2의 출산'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는 출산보다 훨씬 아픈 느낌이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수없이 되뇌다가 어느 날은 폭발한 것처럼 남편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다 행복하자고 아기 낳고 키우는 것인데 어째서 이토록 힘든 것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별 일 아닌 듯 “나? 완모 했지!”라고 말했던 언니들도 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얘기해서 정말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낳고 키워보고서야 알았지만, 아기 엄마들은 정말 많은 신체의 고통을 숨기며 산다. 일부러 쉬쉬하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는 생각으로 발화하지 못하고 자기 고통을 누르는 것이다. ‘애 낳는 게 대수냐'라고 하거나 ‘유세 떤다'는 시선 때문에 스스로 검열하는 거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아기 엄마들끼리의 독특한 유대감도 여기서 기인했을 것이다. 같은 일을 겪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즉 ‘마음 놓고 말해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백 명의 산모가 있다면 백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모유 수유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누군가는 분유도 시작하고 더러는 완모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 사연도 저마다 다르다. 보통은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 아기가 젖을 잘 물지 못해서, 금방 복직해야 해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인다. 나는 지옥의 마사지 이후 모유량이 늘었고, 모자동실의 하드 트레이닝 덕분인지 아기도 젖을 잘 물었고, 사실상 백수에 가까운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일 년간 모유를 먹였다. 이 말은 곧 일 년 동안 아기와 떨어질 수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유 수유의 가장 큰 단점일 것이다.



완모를 하면 아기에게서 완전히 분리되기가 어렵다. 수유 간격이 짧은 신생아와 영아기에는 잠깐 혼자 외출하기도 어려웠다. 아기가 울면 바로 젖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어느 때나 찾아올 수 있다. 밥 먹다가 수유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고, 세탁이 끝나거나 화장실이 급해도 아기가 울면 모든 걸 미루고 젖을 물렸다. 집에서 밥을 매번 해 먹기는 어려워서 이따금 외식도 했는데, 그 어디서나 수유 가리개를 두르고 수유와 동시에 식사를 했다. 한식, 중식, 양식은 물론 쌀국수를 먹으면서, 혹은 숯불갈비를 구우면서 수유를 한 적도 있다. 밥을 먹으면서 수유를 하면 원료 공급과 식량 제조 및 납품까지 동시에 하는 기분이 든다.

 


완모를 해도 모유를 미리 유축할 수 있다면 외출이 가능하기는 하다. 출산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였다. 임신하기 전부터 준비해온 단기 강의가 있어서 사흘을 매일 외출해야 했다. 나는 오직 이 날을 위해 밤마다 스스로 젖소와 동일시하면서 악착같이 유축을 하여 얼려두었다. 일도 잘 진행되고 아기도 집에서 유축 모유를 잘 먹었지만 나는 모유 사출이 심해 하루 종일 수도 없이 수유패드를 갈고 가슴이 퉁퉁 불어 불쾌감을 느꼈다.

집에 오는 길에는 마지막 남은 수유패드는 흠뻑 젖어 이제는 새기 시작했다. 윗옷이 조금씩 젖을 정도였다. 집에 오자마자 수유를 한 번 하고 유축기로 뽑아내니 양쪽 합쳐 200밀리리터 정도가 나왔다. 한쪽에 각각 100밀리리터 이상을 담고 다닌 것이다. 아, 두 번은 못할 일이었다.



장염에 걸려 먹은 것을 좍좍 쏟아낸 날이 있었다. 무엇을 먹어도 화장실로 직행하는 통에 아예 굶기로 했다. 엄마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차라리 분유를 먹이는 게 낫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분유를 샀으나 우리 둘 다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둘이서 한참을 연구하고 허둥대다가 겨우 분유를 타서 먹여 보았는데, 이미 엄마 젖에 익숙해진 아이는 결단코 젖병을 물지 않았다. 아기가 분유를 잘 먹으면 앞으로 마음 놓고 외출하겠다는 달콤한 상상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별 수 없이 당분간은 다시 아기와 밀착된 삶을 살겠구나, 그래도 영원히 젖을 먹지는 않을 테니까 조금 더 고생해야지 싶었다.


 

물론 모유 수유의 장점도 많다. 나와 남편 모두 분유를 먹고도 잘 자랐으니 모유의 영양이 단연코 으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모유 수유의 최대 장점은 간편하고도 강력한 최종 병기가 된다는 점 아닐까. 엄마의 젖을 무는 것은 아기의 가장 궁극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아기의 원인 모를 울음이나 끝도 없는 짜증, 투정에도 수유를 하면 잠잠하게 해결된다. 비행기에서 아기가 크게 울 때도 수유로 입막음할 수 있다. (한 시간 비행 중 40분을 수유한 적도 있다.) 긴 외출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아기가 하루 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폭발시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수유로 달래준다. 웬만한 정서적인 문제라면 수유만 한 해결책이 없다. 그렇다고 아기가 울 때마다 무턱대고 엄마 젖을 들이밀어서는 안 되고, 언제나 최후의 수단으로 써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단유에 무던히 성공하여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10개월 즈음부터 이유식을 주식으로 먹이고 자기 전에만 수유를 했었는데, 아기의 첫 돌이 지난 다음 날부터 잠자리 수유를 끊었다. 아기는 이미 세상의 온갖 신기한 맛을 경험하고 있던 터라 모유에 큰 미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아기를 재우면 습관처럼 젖을 찾고 울어서 남편이 아기 재우기를 담당했다. 단유 5일 차에 자유의 맥주를 마셨다. 근 2년 만의 음주였다.



가끔은 아기가 젖을 빠는 모습이 무척 그립기도 하고, 다시는 그 사랑스러운 광경을 보지 못한다는 게 솔직히 아쉽기도 하다. 번거롭고 아프긴 했어도 젖을 먹이는 게 싫던 적은 없었다. 특히 아기와 연결되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어떤 면에서 성장은 상실을 동반하는 법이다. 삶은 얻고 잃는 과정의 연속 아니던가. 아쉽긴 해도 아기에게 잠시 빌려줬던 몸을 되돌려 받은 이 기쁨을 감출 수 없다. 2년 만에 비로소 내 신체의 주인 노릇을 다시 하게 된 기분이다.


아가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엄마도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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