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의 운하
"추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로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 마르셀 푸르스트
얼마 전 지인의 인스타 스토리에 그녀가 밀라노 나빌리에서의 저녁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올라왔다. 갑자기 그리움이 밀물처럼 가슴에 흘러들었다. 그 저녁 공기의 내음과 운치, 운하에 비치는 불빛들. 밀라노 도심 남서쪽을 가르는 지역에 위치한 나빌리 운하 지역에서 나는 유학생활을 했었다.
이른 아침이면 나는 책가방을 메고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손에 쥐고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나빌리의 수로가 펼쳐졌는데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이 수로를 매일 건너야 했다. 작고 아담한 아치 모양의 다리 위에 오르면 거울처럼 투명한 운하의 물이 반사된 매일의 아침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은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때문에 등교를 위해 다리를 건너는 이 시간만이 온전히 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끔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꼭 나빌리 운하를 걸으며 일상의 복귀를 신고하곤 했다.
홀로 저녁을 먹고 쓸쓸한 마음이 차오르면 가벼운 마음으로 운하 주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수로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에서 저녁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고국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빠른 걸음으로 스쳐가는 나빌리의 물길에 그 얼굴들이 불빛들과 함께 물결 속에서 일렁였다. 나는 감정을 뒤로하고 걸었다. 손을 뻗지 않고 마치 아무런 동요도 없는 듯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이곳에서의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빌리의 저녁 불빛을 보면 그 시절 억눌렀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나빌리 운하는 중세시대에 경작지를 복원하고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축되었고 군사적으로는 외부 세계에 대한 방어를 목적으로 대규모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밀라노의 영주, 지안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는 밀라노 대성당 건축을 통해 이 도시의 위상을 정치적, 문화적으로 끌어올리고자 하였고 나빌리 운하는 대성당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수급하기 위해 건설된 통로로 활용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밀라노 대성당은 이 도시의 정체성과 구조를 재편한 상징적인 건축이 되었다.
밀라노 대성당의 건축을 위해서 각지의 위대한 예술가, 장인, 건축가들이 불러 모아졌고 밀라노는 자연스럽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 사람의 생각과 의지가 도시의 자원을 동원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문화 인프라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이후 나빌리 운하는 주변 농산물, 목재, 석탄, 직물 등의 주요 자원을 도심으로 실어 나르며 도시의 상업, 물류, 생활 기반을 급속도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참여해 수로의 구조, 뗏목 운송, 자동 수문과 관련한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시켰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이 도시의 패션, 예술, 디자인의 중심지라는 정체성은 두오모 대성당 건축과 나빌리 운하의 물길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밀라노에서 열리는 전 세계적인 규모의 디자인 페어와 예술과 건축의 중심지로서의 행사들은 그 시대로부터의 이어진 노력의 궤적일 것이다. 수년 전 우연히 방문했던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계기로 나 역시 이 도시에 매력을 느껴 유학에까지 이르렀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은 운하 주변으로 바, 레스토랑, 상점, 주상복합 건물 등의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빈티지 마켓이나 수상 스포츠 등 다양한 이벤트와 볼거리가 가득한 지역이 되었다. 이른 아침 뭔가 떠들썩하다 싶어 밖을 내다보면 벌써 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활기로 창문이 들썩거리는 넷째 주 일요일이다. 운하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마켓의 행렬을 다 보려면 한 나절은 족히 걸렸다. 아르떼미데와 플로스의 빈티지 조명을 발견하고 운 좋게 가격 흥정에 성공한 후 보물 찾기에 성공한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이 수로를 지나던 자재들은 더 이상 이 길로 운반되지 않는다. 이 수로에는 카약을 하는 동네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 그리고 물새가 전부다. 두오모 대성당에도 미사보다는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장소가 되었다. 장소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변했다. 시간이 흘러 또 많은 것들이 달라지면 이곳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간단한 안주와 알코올을 즐기는 아페리티보(aperitivo)의 낭만은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아있을까? 어쩌면 지금 내가 인스타를 통해 보고 있는 나빌리 수로의 낭만의 빛은 언제 가는 사라질 빛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시대를 지나간 한 사람으로서 내가 잠시라도 그곳에 머물렀다는 것이 감사하고 가슴 뭉클하다. 그립고 그리운 나빌리 저녁의 빛이 스마트폰 속에서 유난히도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