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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Apr 13. 2021

수영장에서 살아남는 법

재미있으면 된다

"내가 보고 있는 것들에는 실상과 허상이 뒤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청둥오리가 호기롭게 물을 가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사이 폭설과 강풍으로 시냇가가 무척 소란스러웠을 텐데 오리들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물 위에 둥둥 떠서 물을 가르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오리들을 보니 어린 시절 도넛같이 생긴 튜브에 몸을 기대고 발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난히 겁이 많았던 나는 유아용 풀로 내려가는 네댓 개의 계단 앞에서 하세월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세 살인지 네 살인지 아니면 더 어릴 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 작은 눈망울 안에 아른아른 비치던 사분원  모양의 계단이 떠오른다. 발끝으로 전해지던 푸른 물의 찬기에 온 몸을 떨며 발을 구르고 또 구르고 내 옆에서 나와의 즐거운 물놀이를 기대하던 엄마는 이미 물러서 계셨다.  그 날 내가 물에 들아갔는지 아니면 발만 담그고 수영장 경계면에 앉아 시간만 보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 계단을 더 내려가지 못해, 아주 오랫동안 일렁이는 물속에 간신히 잠겨 있던 나의 오동통한 발등만 기억날 뿐이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나는 어느덧 튜브도 타게 되고 미끄럼도 타게 되었다. 여름만 되면 찾았던 아빠 회사의 수련원에는 내 또래에의 아이들과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기만 해도 칭찬을 받던 나는 수영장 선배님들의 묘기에 가까운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완전히 엎드린 자세로 미끄러져 내려간 뒤 곧바로 물속으로 잠수를 하기도 하고 뒤돌아 양반다리를 하고 내려가기도 했다. 뒤로 누워 내려가다가 입수와 동시에 몸을 틀어 물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더니 수영장 저 끝까지 유유히 머리를 들고 나타나기도 하였다. 내 또래의 꼬마들을 하나하나 그 모습을 배워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수영장의 선배들은 늘 새로운 트릭을 선보였다. 나를 비롯한 꼬마들은 일제히 존경을 눈빛을 발사하며 신기술을 연마했다. 나는 이렇게 물속에서 노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수영장의 고참이 되어 그동안 갈고닦은 묘기를 선보이며 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영장 선배들은 바로 옆에 있는 수영풀로 모두 넘어가 있었다. 가장 얕은 지점에는 1.2m, 가장 깊은 곳에는 3m라고 씌어 있었다. 나의 몸은 본능적으로 차가운 스틸 계단을 잡고 물속으로 내려갔다. 모든 계단을 다 내려간 것 같은데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나는 수영장 벽면을 잡고 옆으로 이동해 보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는 않았지만 벽에 딱 붙어서 움직여보니 그리 무섭지 않았다. 주변의 선배들은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왼팔을 저었다가 오른팔을 저을 때는 고개를 하늘을 향해 쳐든다음 호흡을 하면서 팔과 함께 다시 고개를 물속으로 넣었다. 선배들마다 조금씩 팔을 젓는 모양이 달랐는데 저 멀리 깊은 곳에서 유유히 떠가는 선배들의 유려한 팔 곡선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멋졌다. 나는 수영장 바로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눈으로 동작을 익혔다. 내 머릿속에 그린 그 모습을 따라 해 보고 따라 해 보았다. 그 당시 나는 쌍둥이처럼 지내던 이종사촌과 늘 수영장에 함께 갔었다. 나는 사촌에게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고 잘했는지를 늘 물었다. 사촌은 너무 잘한다며 나를 한껏 치켜세워 주었다. 나는 자유형과 평형, 배형을 섭렵하며 깊은 풀(POOL)에 안착하였다.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수영폼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자유형이 그야말로 "자유형"이라는 것을, 나의 개구리헤엄은 어쩌면 "개(구리) 헤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서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어색한 모습이었다. 나는 수영 교정반에 들어가서 잘못돼 부분을 수정해 보려 했지만 싶지 않았다. 수영이 재미없어지고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주변에 강습생들을 보니 일제히 키판을 들고 열을 맞추어 음파 음파를 하며 코치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캐나다에 살던 시절, 나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 싶었다. 동네 수영장에 등록을 한 것 만으로 뭔가 안심이 되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라 엄마와 떨어져 바로 선생님과 수업을 하였으나 둘째는 4살이었는데도 나와 함께 수영장에서 수업을 같이 했다. 물과 친해지기 위해 즐겁게 노는 것에서 시작된 단계에서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한국 엄마들은 여기서는 진도가 안 나가 수영 가르치기 힘들다고 했다. 노는 건지 배우는 건지 답답하다는 것이다. 캐나다 공교육의 교과과정에는 수영이 포함되어 있고 모든 수영장에서 동일한 평가기준이 적용된다. 단계마다 명시되어 있는 기준에는 꼭 습득해야 할 항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속에서 10초 숨 참기, 혼자서 5미터 이상 물속에 떠있기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이 안되면 그 단계에서 1년도 머문다. 헉!!!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 기준을 통과하는 것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하다. 물놀이를 하면서 자기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미이고 동시에 물속에서 버티는 능력이다. 수영동작이나 기록 단축 같은 것은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캐나다 애들 수영은 폼이 자로 잰 듯 일정하지 않고 약간씩 달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잘 짜인 시간 안에 모든 영법을 끝냈다고들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렇게 아이들을 물속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지금도 딱히 아이들이 수영을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오래 물속을 즐겼던 것은 분명하다.



잠시를 쉬지 않고 물속을 가르는 오리들을 바라보며 저 녀석들 정말 재미있게 노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는 있지만 추운 겨울에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녀석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알고 보니 오리들은 각자의 몸에 추위에 대항하는 비밀병기를 숨기고 있다고 한다. 오리의 꼬리에서 기름이 나오는데 그 기름이 온몸에 발라지고 표면장력을 높여서 몸이 가볍게 물에 뜬다고 한다. 또한 동맥과 정맥이 가까이 있어서 심장에서 나오는 따뜻한 동맥의 혈류가 식어버린 정맥의 혈류를 데워주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자연은 신비하고 놀랍다. 편안하고 억지가 없다. 아마 저 오리들도 태어나보니 주변에 형아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인데도 용감하게 시냇가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작정 따라 해 보았으리라. 그들이 하는 대로 발놀림도 해보고 고갯짓도 해보고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잽싸게 먹이도 낚아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몸에 맞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배워서 그런지 온갖 장난을 치며 물결을 가르는 오리들이 천진스럽고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오리들의 탄천 생활을 지켜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고 우리 아이들이 수영을 배웠던 그 시간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오리에게 배우는 그 자연스러움의 방식이 이제는 오히려 어려운 삶의 방식이 된 것 같다. 내가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보다 남이 만들어 놓은 방식, 다수가 걸어가는 길이 훨씬 안전하고 쉽다는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어서 일지 모른다. 기록을 단축해야겠다는 것, 남을 넘어서려는 것보다 나의 감정의 선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요즘 깨닫는다. 용기를 가지고 몸을 움직여 보는 것, 내가 수영장에서 살아남은 방법일 것이다.

동네 탄천에서 호기롭게 물을 가르는 오리 ©boah
나도 오리처럼 재미있게 놀 것이다.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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