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다하우 Track.31 낙화 - Epik High
2019. 10. 15 (화)
독일 뮌헨 다하우 수용소
Track.31 낙화(落花) - Epik High
지난밤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우스에서 거하게 마시고 들어와 맘편히 자려했겄만, 룸메이트들이 늦게 들어와 시끄럽게 있어서 잠을 설쳤다. 시끄럽게 한 이유가 남녀가 호스텔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려고 했다는 것이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호스텔에서 하다니...컬쳐쇼크였다.
결국 다른 사람이 리셉션에 문의해서 그 사람들은 퇴실당했지만 이미 잠은 나로부터 달아난 지 오래였다. 그게 새벽 4시 30분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방안에서 이불을 뒤척이며 뮌헨에서 갈만한 곳을 찾았다. 오늘은 저녁에 잘츠부르크로 가는 일정이기에, 그전에는 어디에도 다녀올 수 있는 여유는 되었다. 뮌헨에서 자주 가는 곳과 퓌센도 다녀왔기에, 기억에 남을 만한 의미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한 장소를 목적지로 삼았다.
아침 해가 어느 정도 뜬 무렵, 제일 먼저 씻고 나와 S반을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뮌헨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동네, 다하우(Dachau)로 갔다.
뮌헨 중심지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다하우는 그저 평화로운 마을이다. 시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80년 전으로 돌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전, 1933년의 이곳은 공포와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바로 나치의 최초 수용소가 이곳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모든 나치 수용소의 모태가 된 다하우 수용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전에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을 읽었기에, 다하우 수용소에 가는 감회가 달랐다.
‘Arbeit Macht Frei’
다하우 수용소 입구 철문엔 위 문구가 적혀있다. 다하우 수용소 입구 철문에 적힌 이 말은 당시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이 문구를 보지 않았을까.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은 노동의 가치가 없어진 수용자는 곧 죽음뿐이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다하우 수용소에 들어가면 너무나 큰 부지가 펼쳐져 있다. 막사 하나에 한사람이 겨우 비좁게 누울 공간의 3층침대가 일렬로 쭉 늘어서있고, 그 막사가 무려 30개가 있다. 여기서 수용된 사람만 해도 35,000명이었다. 이마저도 부족해 다하우 인근 주변에 벙커형태의 부수용소(Sub-Concentration Camp)가 여러 곳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초기에는 히틀러를 반대하는 정치범이었지만 이후 유대인, 동성애자, 거지, 장애인, 전쟁 포로, 비(非)아리아인, 공산주의자 등이었다. 그릇된 우생학으로 아리아인 순수혈통의 우수함을 앞세워 유색인종 척결, 그중에서도 유대인 대학살에 선봉을 선 곳이 다하우 수용소였다. 다하우 수용소 모델은 이후 우리가 아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 세워졌다.
다하우 수용소를 시작으로 나치는 독일 전역과 폴란드 아우슈비츠, 프랑스, 리투아니아, 체코,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반에 수용소를 만든다. 특히 다하우 수용소에서는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실험이 시행된 사진은 잔인해서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의사만 보면 겁에 질린 표정을 짓던 사람의 장면이었다. 독일은 현대의학에 많이 앞서간 나라 중 하나인데, 그 이면에는 2차대전 중 생체실험의 영향도 분명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일본도 마찬가지일테고.
수용소와 수용소의 사진자료를 보니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의 극단은 오히려 광기라는 걸 보게 된다.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학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마치 샤워실로 속여 학살한 가스실을 고안한 것처럼.
우린 한 때 세상이 광기와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은 시대였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독일 사람들은 본인들의 잘못된 과오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여기 다하우 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모든 나치 전범의 실명을 공개한다. 사진도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에게 역사의 왜곡은 없다. 한국사람인 나는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씁쓸했다. 우리의 이웃나라는 사과는 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니까. 윤동주 시인이 수감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는 731부대가 생체실험을 자행되었음에도, 일본의 총리는 731 숫자가 적힌 전투기에 당당히 탑승하는 후안무치의 자세를 보여준다.
오늘은 에픽하이의 '낙화'를 BGM으로 삼았다. 낙화엔 이런 가사가 있다.
가질 수 없는 꿈이지만, I have a dream
이 꿈은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망언을 일삼는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우린 그걸 바로 잡아야한다.
헛된 꿈이라도, 이건 반드시 이뤄야 할 꿈이라 생각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오늘은 유난히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