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배리 Jul 26. 2023

내 이름은 세렘

2014.01.10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 내 왼손 검지는, 망고를 손에 들고 자르다 손가락도 함께 베어 버린 후 조금만 눌러도 아프다. 도서관 수업에 오는 아이들 중에도 분명 더 아픈 손가락, 더 예쁜 손가락이 있기 마련. 그중에서도 세렘이는 아프고도 예쁜 손가락이다.


올해 열 살인 세렘이는 눈이 불편하다. 멀리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아서 그림을 그릴 때도 종이를 코앞까지 가져와야 한다. 코를 종이에 박다시피 하고선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할 때면 꼭 서서 고개를 한껏 수그린다. 열 살이라는데 잘 못 먹어서 그런지 몸집도 자그마하다. 도서관 이층 계단 올라오면 딱 보이는 거기에서 엉덩이 한껏 내밀고 그림을 그리는데,  톡톡 치면 쓰으윽 돌아보고, 깔깔 웃는다. 요놈들이 처음 몇 달은 굳어서 웃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날 보기만 해도 빵빵 터진다. 좋을 때다. 말똥이 굴러가도 웃길 때지.


하루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 치료비 후원을 받고 싶어, 의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기본 진찰을 했다. 세렘이는 어째 팔도 불편한 것 같단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리저리 팔을 꼬아보고 올려보고 했더니 겁이 났나 보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눈물을 훔쳐주다 손에 묻은 눈물이 내 마음에도 묻어버렸다. 진찰이 끝나고 세렘이가 휘청휘청 걸어 나가는데, 방향도 잘 못 찾더랬다. 같은 콩만이인 조이 보러 쟤 좀 같이 도서관 데리고 가라고 일렀다. 조이 손 꼭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휘청휘청 가는데,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먼 산을 쳐다보며 눈물을 구겨 넣었다.


하루는 세렘이 어머니께서 도서관에 찾아오셨다. 아들내미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 드렸는데,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그림을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흐뭇하게 보시더라. 또 오줄없이 눈물이 나려고 하길래 교실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접어 넣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아픔에 마음이 아파한다. 정작 요놈들은 점점 밝아진다. 친구들과 칼싸움도 하고,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깔깔거리며 그림도 그린다. 세렘이가 그린 그림에는 사자도 웃고, 염소도 웃고, 양도 웃는데, 나는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요놈도 요물이 분명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