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고 아슬아슬한 이름들

곁에 짧게 머무른 식물들 이야기

by bbj
오랜만이에요. 한 달 만에 글을 이어 쓰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합니다. 그치만 8월 중순부터 다시 쓴다는 약속이 저와의 약속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시 이어서 써 나가보겠습니다.
한달 전에 계획했던 이번 회차의 제목은 ‘까다롭고 아슬아슬한 이름들’이네요. 맞춰 써 볼게요.


식물과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이것저것 욕심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잘 크니까 신나서 ‘다음에는 이런 이쁜 식물을 들여야지’ 하며 검색해보고, 식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게 한 2년 전이었을 거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된 식물 중 하나가 ‘수박페페’ 였다. 잎사귀가 정말 수박처럼 생긴, 동글동글 신기하고 귀여운 식물이었다.

그런데 예쁜 외모값을 하는지, 키우는 난이도는 좀 높았달까. 저 반들반들한 잎을 유지하려면 그에 딱 맞는 적절한 습도, 적절한 햇빛과 통풍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거 찾기가 너무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촉촉한 식물이니 자주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줘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잘 하는데..)


비실비실하면 햇빛이 모자란가 싶어 더 햇빛을 쐬어주었는데, 그렇게 하면 또 고사리처럼 비실비실한 줄기가 말라 전체가 폭삭 내려앉기 일쑤였다.

그렇게 두 번을 실패한 수박페페. 지나가다가 화분을 보거나 인터넷에서 잘 키우고 있다는 후기를 보면 한동안 속이 쓰렸다.


난 뭐가 모자라서 실패했을까, 사진 속 수박페페의 예쁜 외모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지금은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때마다 애처롭게 말라간 줄기가 떠올라서 쉽게 재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잦은 실패를 한 식물이 ‘율마’다.

율마는 언뜻 우리 주변 향나무를 닮았지만 연둣빛 싱그러운 색에, 손으로 쓸어내리면 레몬향이 나는 매력터지는 식물이다. 그러나 이 식물도 습도 조절에 실패해서 갈변하더니 두 번 떠나보냈다.


그래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되어서 세 번째 도전으로 지금도 율마를 기르고 있다.


두 번 모두 습도 조절로 실패한 경험이 있어 조심하며 약간 마르게 키우고 있는데, 잘 키우다 한번 물주기를 놓쳐 1/3이 갈변한 상태다. 갈변한 부분 가지치기를 하다 포기하고 그냥 기르고 있다.


이 두 식물 이외에도, 허브인 로즈마리와 라벤더를 잘 키우다가 습한 여름이나 엄동설한에 긴장을 놓쳐 저세상으로 보낸 경험이 있다. 그때도 참 쓰라렸다.허브들은 씨앗을 직접 심어 세상 귀여운 새순까지 틔워가며 키웠기에 여운이 오래 남았다.

처음부터 까다로웠던 게 아니라 한창 잘 크다 어느 순간 훅 기버려서 마음이 더 그랬다.


식물도 생물이기 때문에 한번 폭삭 죽어버리면 한동안 마음이 쓰리고, 누군가를 잃은 것처럼 허전하다. 그렇게 몇몇 식물들을 잃으며 가장 크게 배운 건 ‘과욕을 부리지 말자’였다. 일도 물건도 아니고 엄연한 생명이었다. 새 식물을 들이는 데 신중해졌다.


그 다음으로 ‘각자의 방식과 속도가 있다’였다. 식물마다 통풍이나 습도, 물주기, 햇빛 조절이 참 다르다. 내 방식대로 ‘이 정도면 됐겠지’ 하면서 키우다가는 다육이같은 사막 스타일의 식물들 말고는 남지 않을 거다. (물론 난 그다지 섬세하지 못해서, 지금 곁의 식물들 몇몇이 내 스타일에 맞추는 것 같기도 하다. 살아야 하니까..ㅎ)


사람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식물이 그나마 양반인 거지, ‘이 정도면 안심하겠지, 이 정도면 오해 안하겠지 또는 호의를 느끼겠지’ 등등 일관된 ‘나만의’ 기준으로 모든 이들을 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일일이 맞춘다면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그 균형감과 적당함 그리고 거리의 감각, 식물들 사이에서도 느낀다.


때로는 식물이 사람보다 더 단호할 때도 있다. 식물은 거의 기회를 안 준다. 참다 참다 영영 가 버리면 회복에 손을 못 쓴다. 그 점에 있어 사람보다 더 단호하다. 자신의 생명마저 함께 거두어 가 버린다.

초록이 한때 치열했던 빈 화분의 쓸쓸함을 보면서도 칼 같은 인간관계의 한 단면을 떠올린다.


지금은 포기해버린 수박페페, 끝내 포기 못한 율마.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이름들을 떠올린다.

아름답고 까다로워 쉽게 얻기 힘든 식물들. 그런 그들마저 본연의 모습 그대로 오래 함께하는 날이 온다면, 나도 더 많은 생명과 존재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그늘이 되어 있겠지.

keyword
이전 03화강인한 다육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