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이야기 세 번째.
(월요일 연재인데 찔리고 찔리다 후다닥 쓰는..)
난초 다음으로 만난 식물이 다육이다.
난초 두 그루가 있던 휑한 방에 들어온 두 번째 선물이었고, 물 자주 안줘도 잘 큰다는 말에 그냥저냥 안심하고 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보니, 화분에 비해 비대하게 자라 있는거다.솔직히 좀 괴물처럼 보여서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홧김에 가지 네 개를 싹둑 잘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그렇게 팍 자르면 기가 꺾여서 본체의 성장이 저조해지는 것 같다..).
가지 네 개를 자르고 나서, 아 아거 좀 심했나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했었는데. 며칠 뒤 보니 잘린 그 자리에 새순 여러 개가 막 나 있는 거다.
그때가 11월말 12월 초였는데, 나무들이 거진 다 잎을 떨구는 휑한 시기에 그 모습이 얼마나 놀랍고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마침 잘린 다육이는 겨울에 생장이 활발한 동형다육이었다. 반대인 하형다육이라면 그냥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여튼 그때부터 식물이라는 존재 자체를 눈여겨보게 된 것 같다. 나에게 식물이란 다가오기만 하면 죽어버려서 효능감 제로를 느끼게 만드는 연약하디 연약한 존재일 뿐이었는데. 무심한 나같은 사람 곁에서도 안간힘을 쓰고 살아내는 식물이 있구나 하면서.
위 사진에서 흰 네모 화분이 내가 당시 이발하듯이잘라버린 다육이. 그렇게 잘리고 산삼 모양으로 휑덩그렁하게 있다가 몇개월만에 다시 저리 원상복귀됐다. 맨 왼쪽 원모양 화분이 그 잘라버린 네 가지에서 자란 다육이들이다.
사실 난초는 쩔쩔 매면서 제발 죽지만 마라 하며 키우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다육이는 막키운 것도 모자라 이발하듯이 가위질을 해댔으니 차별도 그런 차별이 없었지 싶다.
그런 내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봐라!“
다육이는 온몸으로 말해 주었다.
게다가 그 가위질 해서 잘린 가지를 어딘가에서 얻어 들은대로 흙에 푹 꽂아두었더니 금방 자라서
지금은 내가 일하는 방에서 가장 큰, 지금은 또다시 화분이 미어 터질듯한 대품이 되고 말았다.
다육이는 사막이 원산지인 아이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막이 없는데, 키우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어쩌다 우리나라까지 온 식물들이다.
물을 주면 낙타처럼, 자기 몸에 오래 머금고 있다.
어쩌면 다육이를 막 들여와서 키우던 그때가 내 인생에 사막같은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이직했다고 축하한다지만, 십수년 즐겁게 하던 직업을 떠나 새로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도 어려웠고,
갑자기 여러 기대어린 시선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내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곳도 그땐 찾지 못했다. 효능감도 많이 떨어져 있던 시기였다.
너무 자라 괴물처럼 보였던 다육이를 새 화분에 옮길 생각은 안 하고, 강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린 나였다. 그런 내게 다육이는 다시 보란듯이 새잎을 보여주어 놀라게 했다. 식물에 거의 무지했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내게 죽었다 부활한 존재처럼 보였다.
그때의 희열과 감동, 희망, 새로운 효능감, 다짐과 결심 등. 혼자 내밀하게 느꼈던 여러 감정과 감사함을 오래 잊지 못했다.
그때 이후로 내게 식물은 다 스승이다. 특히 다육이는 내 식스승들 중에 최고령자다.
지금도 여전히 보기만 해도 힘이 되는 든든한,
내 곁에 장승처럼 버티고 선 존재다.
우리 오래 함께하기를.
ps. 브런치 글 조금 쉬다 오겠습니다. 현생이 갑자기 바빠져서..살려고 써내야 하는 글들이 많아졌거든요. 허덕이지 않고 여유롭게 뭔가 쓰려면 한달은 걸릴 것 같아요. 8월 중순부터 다시 만나요!